[목당 이활의 생애-37]민관 수출입가격결정위원회 구성

2016-07-13 09:00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37)
제2장 재계활동 - (32) 가격사정위원회(價格査定委員會)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마카오 무역 및 홍콩 무역은 해방 후 초기 무역기의 꽃이었고 따라서 무역협회의 활동도 보람찬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 특히 가격사정위원회(價格査定委員會) 활동은 인상적이다.

마카오 무역에선 페리오드 호와 캔느바 호, 산 제르니모 호 등 상하이(上海)의 재벌들이 2만3000t급의 상선(商船)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우리 업계는 이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크 무역과 달리 규모가 큰 거래이고 보면 공정거래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했다. 이에 우선 수출입 가격의 적정가격 사정을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느낀 상무부(常務部)는, 1947년 7월 19일, 수출입 가격은 수출입가격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사 결정키로 한다고 발표했고, 다음날인 7월 20일에는 상무부령 제55호로 수출입 가격사정위원회 위원으로 20명의 명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측 10명에다 민간측 10명으로, 협회 회원 상사와 업종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정부측>
조범행(趙範行) 무역국장
한승인(韓昇寅) 상무국장
이태흡(李泰洽) 물가행정처장
양주동(梁柱東) 약무국장
정문기(鄭文基) 수산국장
김기덕(金基德) 광무국장
유한상(柳漢相) 공업국장
정구흥(鄭求興) 농림국장
윤치창(尹致昌) 전매국장
김진형(金鎭炯) 환금은행전무

<민간측>
강성태(姜聲邰) 무역협회
김익균(金益均) 건설실업
김항변(金恒變) 유한양행
주요한(朱耀翰) 상호무역
박병교(朴炳敎) 화신무역
이성희(李聖熙) 수산업회
김동경(金東經) 잠사회
정명선(鄭明善) 광업회
김재서(金在瑞) 양지(洋紙)배급조합
이세현(李世賢) 상공회의소

그러나 상무부 주관 아래 가격사정위원회의 활동이 전개되어 수출입 가격을 결정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방대한 수입 물량을 받아들일 만한 자금력(資金力)이 없는 우리 업계이고 보니 화상(華商, 화교상인)들이 오히려 난처한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마침내 요로에 진정하여 정부가 나서서 업계와의 중개를 요청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 홍콩 무역선까지 들어와 7척 이상의 무역선이 발이 묶여 있었다. 이때의 중국은 연합국의 일원이었고 따라서 중국 화교는 콧대가 높았다. 이들은 미군정에 작용하여 10월 18일에는 검찰청이 나서서 교역임시위원회(交易臨時委員會)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청·무역국과 물가행정처 그리고 양국 무역업자 등 관계 관민이 연석 좌담회를 열고 위원회를 구성, 입항 중에 있던 마카오와 홍콩 무역선 7척에 대한 수입물자를 국내 업자들이 인수토록 촉구하게 되었다. 검찰청이 나서서 물건을 사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정부 기관이 나서서 거래를 직접 알선할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몇 차례 위원회가 소집되었으나 회의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11월 22일 회의를 마지막으로 교역임시위원회는 해체되고 처리는 무역협회로 넘어왔다. 결국 체화물자(滯貨物資) 20억원 중 생고무·면화와 설탕·석탄 등 덩어리가 큰 물자를 제외한 물자는 업자들이 인수하여 가는 방식을 취했으나, 이들 물자들도 업계가 공동 인수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이 영세한 업계이고 보니 협회가 나서서 공동 인수를 해야 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협회 회원들이 직접 수출을 꾀하게 된 것은 경 1948년에 들어가서였지만 이때도 역시 공동 수출(共同 輸出)이라는 과정을 밟아야 되었다. 해외 시장에 어둡고 수출 경험도 없었으므로 협회가 주동이 되어 공동 수출을 논의하였고, 이런 과정을 거쳐 1948년 1월 24일 제1차로 1억5000만원의 상품을 홍콩에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사업에 참여한 상사들의 이해가 엇갈려 그 조정이 상당히 어려웠지만 협회의 조정으로 실현을 보게 되었다. 현지 파견 인원은 3명으로, 홍콩 현지에 주재중이던 김인형(金仁炯) 동아상사(東亞商事) 전무와 주요한(朱耀翰) 상호무역(相互貿易) 전무 및 강성태(姜聲邰) 무협 상무 등이었고 교체 파견원으로는 화신무역 사장·중앙교역 사장과 건설실업 사장·삼흥실업 사장·수산업회 회장·무협 회장 및 동아상사 사장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