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인생, 극장] ‘흐트러지다’ 히데코의 시작
2016-07-05 14:10
“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좋아해요. 그걸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그러니까 인생 영화를 묻는다면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흐트러지다’를 말할 거예요.”
나루세 미키오는 일본 영화 1세대 감독으로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위대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20년,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해 약 10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을 거쳐 1930년 ‘찬바라 부부’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박찬욱 감독이 인생 영화로 꼽은 ‘흐트러지다’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64년 제작된 이 영화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레이코(다카미네 히데코)와 시동생 코지(가야마 유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레이코는 조그만 가게를 꾸리며 20년 가까이 늙은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을 돌보고 있다. 시동생 코지는 가게를 크게 키우고, 그동안 고생한 레이코에게도 보답하고 싶지만, 시누이들은 레이코가 집에서 떠나주길 바란다. 한편, 코지는 레이코에게 순수한 사랑을 고백하는데, 놀라면서도 마음이 흔들린 레이코는 집을 나가기로 한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다카미네 히데코라는 여배우와 15편의 영화를 찍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영화를 보면 50년 대~60년 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주인공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독립적이고 주체적이에요. 물론 지금 보면 한계가 있지만 동시대들 영화 중 가장 독립적이죠.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아가씨’의 히데코를 만들었죠. 두 사람의 만남 중에서도 단연 최고작은 ‘흐트러지다’인 것 같아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과 멜로드라마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키워드이자 그의 작품 속 특징이기도 하다. 히데코라는 이름을 따올 정도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여성 캐릭터를 사랑하는 박 감독이 앞으로 어떤 성향의 여성들을 그려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