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 국회도 키웠다…징벌적 손해배상 법안 2년 이상 계류

2016-05-08 14:50

지난 2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아타 올라시드 샤프달 옥시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안방의 세월호’ 사건으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국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대 국회 들어 기업의 악의적이고 반(反)사회적인 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실제 피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집단소송제’ 등의 법안이 2년 넘게 계류 중인 것으로 드러나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첫 발생(2002년)한 지 14년, 이른바 ‘옥시 사태’가 발발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부당국이 실태 조사에 나섰다는 점에서 행정부를 견제할 입법부 역시 사실상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관련 법을 도입할 경우 소비자의 소송 남발을 막을 안전장치가 전무한 데다, 막대한 피해비용에 따른 기업 활동의 위축을 이유로 신중론을 편다. 현행법상 집단소송제는 증권범죄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 상임위 계류 중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옥시 사태 관련 법안에는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2013년 10월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과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이상 2014년 2월 서영교 더민주 의원 대표발의), ‘집단소송법안’(2013년 8월 우윤근 더민주 의원 대표발의) 등이 있다.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12배의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한 ‘한국형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집단소송법안’은 소비자의 피해 구제와 기업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한 집단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각각 골자로 한다. 현재 이 법안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둘러싼 피해자 구제의 문제점으로 꼽힌 ‘제한적’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19대 국회 들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입법 미비에 따른 ‘소비자 주권주의’가 무너지면서 피해 입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소송에 나설 경우 소비자가 거대 기업을 상대로 피해 자료를 요구해야 하는,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제2의 옥시레킷벤키저 사태가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국회 본청. ‘안방의 세월호’ 사건으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국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대 국회 들어 기업의 악의적이고 반(反)사회적인 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실제 피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집단소송제’ 등의 법안이 2년 넘게 계류 중인 것으로 드러나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소비자 주권주의 어디로…국회 늑장 입법화 촉구

우리의 경우 현행법상 제한적으로 도입한 집단소송제의 경우 원고로 참여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 1996년에 도입한 이 제도는 현재 일본과 프랑스 등이 채택하고 있다. 2000년에 제정된 ‘제조물 책임법’은 입증책임을 기업에 뒀지만, 그 적용 대상은 제조물 결함에 국한, 실효성이 낮다.

서영교 더민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관련 법안을 19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백재현 의원도 “제조물 책임법은 피해의 사전 예방과 기업윤리 제고, 국민 안전을 위한 일석삼조 법안”이라며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입법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소비자 집단소송제 인정을 통해 소비자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손수호 변호사(법무법인 현재)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의 도입에 대해 “당연히 필요하다. 지금은 피해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만 배상하면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업에 큰 경각심을 주기 어렵다”며 “영미법계의 제도를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으나, 필요성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송 남발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입법화도 국회 몫으로 남을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