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바보야 문제는…] ③‘권력암투→사천→탈당’, 지역구 공천 민낯

2016-04-26 15:26

지도로 본 20대 총선 지형 [그래픽=김효곤 임이슬 기자]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끝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핵심은 87년 체제의 균열이다. 4·13 총선을 통해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인 1노3김(一盧三金)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 대구·경북(TK)의 새누리당·호남의 더불어민주당·캐스팅보트(casting vote) 충청이 군웅 할거한 지역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2018년 체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돌풍의 주역인 ‘샌더스 열풍’에서 보듯, 구체제에 반기를 든 분노한 중도 무당파의 실체가 2018년 체제 안착의 시발점이다. 이에 본지는 각 당에 뿌리내린 87년 체제의 뿌리(1인 보스주의)를 도려내고 97년 체제(신자유주의)를 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한국 정당의 지역구 공천은 ‘낙하산식 사천(私薦)’의 판박이다. 겉으로는 ‘상향식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지만, 속살은 제왕적 권한을 가진 특정 지도부와 계파의 ‘낙하산 공천’이 대다수다. 특정 인사에 의한 단수 공천·전략 공천의 미명하에 밀실에서 진행되는 ‘측근 내리꽂기’ 등이 대표적이다.

87년 체제를 기점으로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정당 운영 방식의 제1 원리는 ‘힘에 의한’ 타율적 기제다. 더구나 종속적 정당 기속으로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제로에 가깝다 보니, 공천의 비민주화가 비일비재하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에도 한국 정치가 ‘권력암투→특정 계파에 의한 사천→탈당’ 등의 뫼비우스 띠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다.

◆‘당원중심 vs 시민중심’…권력투쟁 산물

26일 여야와 정치 전문가에 따르면 정당 공천제의 효시는 1954년 5·20 국회의원 총선거(제3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은 203명을 선출하는 5·20 총선을 앞두고 181명의 공인 후보를 내고 당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결과는 114명(56.2%) 당선. 무소속은 67명, 민주민국당 15명에 그쳤다.

앞서 제헌헌법과 제2대 총선 땐 정당 공천제가 유명무실했다. 현행 헌법이 무소속 출마를 규정한 만큼, 정당 공천제와 선거 출마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정당 공천제 자체가 권력 확대를 원하는 당과 당선을 요하는 후보자 간 이해관계의 산물인 셈이다.

이후 정당 공천제는 ‘당원 중심주의’(당원투표)가 주를 이룬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를 거치면서 1인 보스 중심의 계파 정치와 당권 경쟁으로 점철됐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 중심주의’(완전국민경선제)가 정당 공천의 한 축으로 부상했으나, 동원형 경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당원 중심주의냐, 시민 중심주의냐’가 논쟁거리인 이유다. 

당원 중심주의는 정당의 책임정치에 부합하지만 과거 ‘박스 떼기’ 논란에서 보듯, 유령당원 모집을 일삼아 정당 민주주의를 해쳤다. 게다가 원내 3당 모두 진성 당원제를 미채택, 100% 당원 투표를 통한 후보자 선출에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현재 각 당은 정확한 당원 수를 파악조차 못 할 만큼 ‘종이 당원·허수 당원’이 많다.
 

국회 본청. 26일 여야와 정치 전문가에 따르면 정당 공천제의 효시는 1954년 5·20 국회의원 총선거(제3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은 203명을 선출하는 5·20 총선을 앞두고 181명의 공인 후보를 내고 당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결과는 114명(56.2%) 당선. 무소속은 67명, 민주민국당 15명에 그쳤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공천제 법제화 절실…선관위가 나서야

개방성을 핵심으로 하는 완전국민경선제는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정당 정치의 책임성과 자율성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막대한 선거비용(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약 368억원 소요)이 들고 정치적 소수자인 여성과 노동자·농민·장애인 등의 선거 진입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한국 정당의 가장 큰 문제는 당원 중심이 아닌 점”이라며 “선거 때마다 공천 문제가 차기 당권과 대권과 결부되면서 각 당의 지도부가 ‘명망가 내리꽂기’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답이 없는 제도를 놓고 정당 내 각 계파진영이 자신에 유리한 안만 고집하는 공학적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진영은 완전국민경선제를, 당내 조직력이 강한 측은 당원 투표를 고집한다.

전문가들은 공천제의 법제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중요한 것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의지”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농협은행장 선거를 위탁하지 않느냐. (사천이란 비상적 상황을 끝내기 위해) 선관위가 각 당의 경선의 참여하는 선거인단의 자격 심사는 물론 투표 행위 등의 책임을 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당원 중심주의’와 ‘시민 중심주의’의 절충점인 숙의(熟議) 선거인단도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유성엽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제안했던 숙의 선거인단은 선관위에 위탁해 선거구별로 성별·연령별·지역별로 무작위 추출된 선거인단이 자격심사위원회를 통과한 예비후보자의 토론과 정견발표 등을 듣고 투표하는 형태를 가미한 제도다. 차 교수는 “숙의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 현재 각 당이 안고 있는 공천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선거관리위원회 내에 위치한 종로구 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를 점검하고 있다. 종로구에는 여야 유력 후보를 포함해 무려 10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