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파르헤지아] 바보야, 문제는 ABC야

2019-12-27 15:02
[아주경제 2020신년어젠다] 기본은 ABC, 미래도 ABC다

청년들이 2020년의 비상을 기원하며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1992년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인플레를 잡으려다 경기침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죠. 이후 42대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라고!)라는 독특하면서 강력한 캠페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경제 실정(失政)이라는 포인트를 공격목표로 잡은 뒤, 쉬운 구어체로 핵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올해는 그야말로 '문제는 경제'인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벤 버냉키와 JP 모건은 일찍이 2020 글로벌 경제리스크를 예언했습니다. 한국은 금리, 환율, 부채, 인구(고령화), 버블과 쏠림현상에 중국리스크까지 도처에 지뢰밭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극심한 진영 격돌의 정치에 휘말려 경제의 활력을 살릴 큰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 아닌 이념투쟁과 당파싸움으로 국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갈등과 혼란의 와중에서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가져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상서로운 흰쥐의 해로 지금 우리가 발휘해야할 미덕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쥐는 근면과 부(富), 다산(多産)과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또한 쥐는 청력이 좋아 지진의 낌새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총명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2020년 위기를 뚫기 위한, 흰쥐의 판단력과 행동력이 절실합니다.

아주경제는, 흰쥐가 대한민국에게 들려주는 말을 올해의 어젠다로 삼기로 했습니다. 흰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ABC야!" 다소 느닷없어 보이는 말에 당황을 했습니다. ABC? 그게 뭔데? 이렇게 되묻자 흰쥐는 대답하기를.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한 것은 기본의 ABC와 미래의 ABC라고!"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Back to the Basic으로 흐트러지고 찢긴 나라를 다시 추스르고, AI와 Big Data(&Block Chain), Clouding과 같은 4차혁명에 총력을 기울이란 말이로군. 맞아, 지금 우리에겐 기본 회복과 미래 올인이 동시에 필요해. 그래서 ABC!

[바보야, 문제는 ABC야] 기본은 ABC, 미래도 ABC다

# 기본에 답이 있다 - ABC로 돌아가자


문재인 정부가 임기반환점을 돈 지금, 이 나라는 지난 정부의 적폐를 씻는 일신(一新)을 꾀했으나 그 과정에서 정책의 의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고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로 깊어진 진영 갈등으로 민심이 격동하여 국가의 안정감이 사라진 양상입니다. 새해를 맞아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국가를 정상화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전열을 갖출 수 있도록 기본의 ABC를 재점검하는 일입니다. 

1. 국정의 ABC = 대통령과 정부는 일부 진영의 권력이어서는 안됩니다. 정권이 인식하는 민심이 지지자들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만이어서는 안됩니다. 다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정부로 나아가야 이 나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권력이 의욕을 지니고 시행하려는 모든 국가 정책과 시스템 구축은, 진영의 가치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전체의 가치라는 점이 모든 국민과 공유되어야 합니다. 지금 국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동(大同,반대파 정당까지 함께 참여하는 정치)'과 '탕평(蕩平, 반대파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기용할 수 있는 열린 인사)'입니다. 국정은 권력의 희망을 우선시하여 국민을 내모는 '희망고문'이어서는 안되고 현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이어야 합니다. 

2. 정치의 ABC = 국회는 여야할 것 없이 당리당략과 포퓰리즘, 지역구 이기주의, 반대를 위한 반대 등으로 소모전의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국정의 대동-탕평과 발맞추어, 여야 또한 광폭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상대 압살(Killing Partner)의 전투적 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야당이 지난 정권의 '트라우마'를 여당에게 악의로 갚는 방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스스로 수권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일과 같습니다. 상호 이견을 존중하면서, 절차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야 갈등의 와중에 급격히 저하된 것이 입법부의 품격이었습니다. 정당의 이익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의 분자'가 된 의원들. 국회정치가 최소한의 자존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민의(民意)의 무게에 비해 금배지의 무게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조롱을 받는 국회의 비극.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개인개인이 국민대표의 책임감과 고뇌를 지닌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게 의원들이 지녀야 할 ABC가 아닐지요.


3. 국가의 ABC = 우선 민심이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월드컵 응원전 때 붉은 옷을 입고 모였던 사람들이 좌우가 있었습니까? 그들이 진영에 따라 나눠 앉았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다른 것이었나요? 오직 애국심과 국민적 자부심으로 함께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달궜습니다. 진영논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들에게 임의로 주입된 낡은 이념일 뿐입니다. 그 이념조차도, 따져보면 원래의 목표는 같았습니다.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었지요. 다른 진영을 전쟁처럼 공격하고 제거하는 일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진영논리보다 더 강하고 원천적인 우리 내면의 기본과 상식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지닌 양심의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질서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진 국민으로 가는 '정신의 업그레이드'이며, 국가 품격을 새롭게 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국민이 높아져야 국격이 높아집니다.

4. 경제의 ABC = 새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공정과 평등, 환경을 우선하는 가치로 두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쳐온 것은 의미있는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적인 정책이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생겨난 일정한 문제들을 살피는 것 또한 정부가 공을 들여서 해야할 것입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통계를 바꿔 보여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그 문제와 부작용을 들여다 보고 정책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한 행보를 꾀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정책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시행하는 전략의 완급이나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접근이 가능해야 정부가 지닌 철학을 성공리에 실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원전의 문제나 타다의 문제, 혹은 다양한 기업환경 문제 등에서, 정부의 접근 기조는 '철학'의 강조가 아니라, 유연성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유연성 가운데서도 정부가 어떻게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심일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유연하지 못했고,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5. 안보와 외교의 ABC = 남·북관계는 일방의 정성이나 의욕으로 본질이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에 그렇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와 안보는, '같은 궤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특히 안보는 전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안보를 희생하거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평화정책의 경우, 국민의 충분한 동의와 공감대 확산을 통해야만 할 일입니다. 대북 평화 노력은 남북 양쪽의 분위기와 속도에 대한 면밀한 저울질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대북기조가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은, 공연한 의심 때문이 아니라 전쟁을 치른 나라의 합리적 의심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 지도자에 대한 한결같은 신뢰 또한 필요한 일이나, 그것은 정권 차원의 신뢰여서는 안되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한 가운데 진전되는 신뢰여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외교가 모든 외교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 수 없지만, 그것만이 외교인 것처럼 모든 국가 정상들 앞에서 내놓는 의제가 '대북제재 해제'만이서는 안됩니다. 각기 국가마다 긴요한 맞춤형 의제들이 필요하며,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국제적 위상과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적 입장과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입장이, 이념 진영적 관계로 접근하고 운영하는 것을 국민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많은 위험과 고통이 따를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중대한 외교적 선택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다 분명한 입장의 설명과 설득이 필요합니다. 외교가  ABC에서 벗어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나 국민혼란은, 다른 무엇보다도 심각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답이 있다 - ABC(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딩)로 나아가자

지난 11월 26일 퇴임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내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를 맡았던 사람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죠. 장 위원장은 네오위즈의 공동창업가였고 검색엔진 기술기업과 게임회사를 창업한 IT기업가였습니다. 그는 주52시간제가 국가 단위에서 정해지는 것이 기업 자율권을 침해하며 불확실성과 싸우는 R&D 영역에는 적절치 않다는 직언도 했습니다. 그는 문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 100명 중에서 기업을 경영해본 사람은 3명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기업 현실을 모른 채 정부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데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201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국내 일자리의 52%가 10년 뒤인 2027년엔 로봇과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죠. 정부는 빅데이터, 차세대통신,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가상증강현실, 지능형로봇, 지능형반도체, 첨단소재, 혁신신약, 신재생에너지 등 13개 분야에 5년간 9조원 규모의 R&D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산과정을 인공지능화하는 스마트공장을 3년내 3만개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정부 또한 ABC(AI와 Big Data(&Block Chain), Clouding)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미래의 국력과 번영 또한 여기에서 만들어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 방향이 옳은지 일대 점검이 필요합니다. 우선 줄어드는 일자리를 4차 산업혁명의 분야에서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ABC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산업의 중심을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획기적으로 ICT 생태계 속으로 이식하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우선해야 합니다. 일자리를 여기에 연결시켜 놓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지닌 생력화(省力化) 특성을 부정하려는 태도이며, 이 첨단의 영역을 국가의 관리로 꾸려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구태의연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은,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 공장을 어디에 짓고 어느 기업이 어떤 분야를 맡으라고 하는 방식의 국가적 관리의 태도는 가급적 줄이고, 꾸준하고 치밀한 생태계 조성의 조연 역할을 맡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들의 자율적 판단과 투자가 필요하며, 정부가 해야할 일은 그들의 기업행위를 옥죄는 일련의 규제를 파격적이고 신속하게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역량 있는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혁신을 옭아매는 규제를 손질해야 합니다. 내년 규제혁신 예산은 100억원대에 불과합니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안되는 것을 빼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체계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필요가 있습니다.

4차 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중심이지만 거기엔 탄탄한 제조업이 받쳐줘야 합니다. 혁명이 백지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르네상스 위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3차 산업혁명에서 성공해 10대 기업에 진입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이를 가능케 한 점도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기업을 위해 정부가 해야할 일은 '기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혁신성장 목표는 뚜렷해야 합니다. 적어도 한국기업 4-5곳이 20년 뒤에는 글로벌 10대 기업에 오르는 것을 겨냥해야 합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철학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합자 호출서비스인 타다와 관련한 '모빌리티(이동수단) 정책의 원칙'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국은 통신망에 있어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인공지능 기술력도 높습니다. 역량을 갖춘 젊은 벤처들을 대대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국가적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정부는 단순히 일자리 차원으로 접근하는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우수한 인력들이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비대해진 공공기관과 준정부기관에 몰리는 현상은, 인적 자본의 국가적 운용 차원에서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뛰어난 인재가 혁신성장의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이 정부가 해야할 진짜 ABC가 아닐지요.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