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상보)

2016-04-25 16:16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한진그룹]

 
아주경제 이소현 기자 =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이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위해 회사를 채권단에 맡기는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자율협약이란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채권단이 이를 구제하기 위해 지원하는 정책으로, 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이다.

산업은행은 이번 주 안에 하나·우리은행 금융권 채권기관들과 받아들일지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율협약은 채권단 전부 동의를 전제로 내달 초 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산업은행에 경영정상화 내용이 담긴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다.

조양호 회장이 2년 전 악화일로를 걷던 한진해운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독자적 자구노력만으로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한 결과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진해운의 총 차입금은 5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진그룹은 “채권단의 지원을 토대로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은 외국 선주와의 용선료 협상 대책과 대주주의 경영권 포기, 출자 전환 등 강도 높은 자구계획 없이는 자율협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회생절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업종이나 상황이 현대상선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만큼 자율협약 개시도 비슷한 방향으로 갈 것 같다”며 “일단은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 돼야 그나마 정상화시킬 수 있는 여력이 생기니 그 부분이 우선이다. 한진해운도 현대상선과 같이 일단 채무유예를 조건으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전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사재출연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현실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데 있어서는 회의적이다.

박기홍 하나금융연구원 기업금융팀 총괄팀장은 “채권단이 요구하는 사재출연은 기업에 비전이 남아 있거나 돈을 조금 더 투자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할 것”이라며 “해운업 자체가 쉽지 않고 글로벌 경기가 안 좋은 상태라 오너일가도 주식을 팔고 경영권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과 장녀 조유경, 차녀 조유홍 씨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인 지난 6일부터 20일까지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 76만주를 전량 매각했다. 이는 한진해운 전체 주식의 0.39%에 해당한다.

이에 이날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이날 주요 주주였던 최 회장 일가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고 손실 회피를 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한진그룹은 그동안 한진해운 살리기 위해 할 만큼 했으며 여력이 없다는 판단 아래 자율협약을 신청하기까지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이에 조양호 회장의 사재출연은 여력도 명분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진해운은 당초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3남인 조수호 회장이 경영했지만 2006년 그의 갑작스런 타계 후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독자경영 해왔다. 그러나 해운업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터라 단기적인 실적에만 급급해 적절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또 고가 선박을 대량 구매하는 등 무리한 확장에만 열을 올려 2013년 부채비율 1400%, 영업적자 3000억원 등 재무적 부담을 안겼다.

조 회장은 ‘해운왕’을 꿈꾼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한진해운을 국가대표 해운사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이에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직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 그룹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이 백기사를 자청해 한진해운에 쏟아 부은 돈만 1조원 규모다. 조 회장이 ‘무보수 경영’을 펼치며 경영정상화에 힘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조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는 수순에서 자율협약은 진행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으로 정부발 구조조정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오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 부처 차관급이 참석하는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고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새누리당에서 총선 때 주장했던 양적완화도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에 어려운 처지라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다”면서도 “국가 기반산업인 해운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주도의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