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몰린 구조조정]IMF '빅딜'과 흡사한 정부 해법, 후폭풍 우려

2016-04-25 15:53

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조선, 해운 업종에 대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재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구조조정이 몰고 올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 항공기 등 ‘빅딜’ 정책과 흡사하다며 향후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25일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곳은 전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뿐”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은 기업이 경영악화로 임계치에 다다르면 자금 지원이 막혀 자연스레 도태되거나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에 나서게 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법적 규제가 아닌, 기업이 숨 넘어갈 때 쯤 전기충격기 식으로 자금 지원을 해주는 모양새였다”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 주도 빅딜은 실패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해운업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정부차원의 개입도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국적선사를 줄일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으면서 두 국적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같은 거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병설이 대표적이다.

이와관련, 재계 일각에선 IMF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빅딜의 악몽을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빅딜에 관여했던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회고록에서 “정부 주도의 빅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간 거래는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서면 어긋나게 된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착잡하다”면서 정부주도 차원의 구조조정의 한계를 지적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석유화학과 철도차량, 발전설비, 항공기 등 4개 분야의 사업을, 삼성그룹은 석유화학과 항공기, 자동차, 발전설비, 선박용 엔진 등 5개 분야의 사업을 각각 정리했다. 대우그룹은 철도차량과 항공기, 전자 등 3개 분야의 사업을 정리‧통합했다.

이중 LG전자의 반도체부문 매각은 정부주도 구조조정의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1999년 현대는 LG와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 LG반도체를 2조5600억원에 인수해 하이닉스로 재편한 바 있다. 하지만 반도체 시황 악화와 유동성 위기가 더해지면서 2년 만에 채무불이행 선언과 2조원대의 분식회계를 비롯,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했다.

특히 반도체 전문인력 상당수가 대만 경쟁업체로 이직하면서 기술 유출도 뒤따랐다.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한국의 구조조정 덕분에 자국 반도체 기술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정부, 구조조정 역할과 함께 책임도 져야"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불가피하다면서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있어서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김진성 우리금융연구소 실장은 “민간 부분의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다만 구조조정 진행이 안될 때는 누군가 나서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주도든, 민간 주도든 주도권을 가진 쪽에서는 역할 뿐 아니라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홍 하나금융연구원 기업금융팀 총괄팀장은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민간차원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부문인 만큼 정부가 주도해서 빅딜이 진행돼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