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금감원의 일방적 발표에 '발끈'
2016-04-21 00:01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 2012년식 국산 중형차를 타는 김영희(41)씨가 도심 외곽지역을 주행하다 보행자를 차량으로 치어 다치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시 시각은 오전 2시였고, 보행자는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운전자의 월 납입 보험료는 어떻게 할증될까. 또 사고 근처에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없었다면 적정 할증선은 얼마나 될까.
보험업계가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자동차보험 관련 불합리한 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를 반영한 상품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안전 운전을 하고 교통사고 과실 비율이 적을수록 납입 보험료가 적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객관적으로 이를 책정할 과실도표 할증 비율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개선 방안 중 가장 골치 아픈 과제는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에 따른 보험료 할증 차등화' 조치다. 이는 교통사고 발생 시 과실비율이 큰 운전자에게 차등 할증을 부과해 이듬해 자동차 보험료를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 사고 시에는 당사자의 과실비율을 따지지 않고 사고 횟수로만 할증해 실제 과실 책임이 없어도 자동차 보험료가 올라가는 등 억울한 사례가 많았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감원 예상대로 오는 12월부터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보험 관련 분쟁이 폭증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현재도 사고 발생 시 지급된 보험금 규모로 보험료를 할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과실비율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데 객관성없는 할증 기준이 적용될 경우 사회적 갈등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A사 관계자는 "주변 환경, 사고 당사자의 상태, 날씨 등 수 만 가지 경우의 수를 비교해 과실비율을 따져 묻기가 쉽지 않다"며 "누가 더 잘못인지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어렵고, 보험사와 소비자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할증 체계를 만들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B사 관계자 역시 "과실도표와 판례가 있다고 해도 보험사가 사법기관이 아닌데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에 따라 매월 납입 보험료가 달라지는데 소비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아직 관련 TF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과실비율 산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각종 분쟁과 민원이 급증할 텐데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최종 수혜자는 소비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계는 바쁘다.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등 다수의 보험사는 운전습관에 따라 보험료를 깎아주는 '운전 습관 연계보험'을 개발 중이며, 동부화재는 다자녀 가구의 운전자들이 다른 가입자들에 비해 안전운전을 한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다둥이 가정에 보험료를 5% 깎아주는 특약 상품을 개발 중이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실비율을 보험료에 직접 할증하겠다는 것은 안전운전에 대한 강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적정 할증비율은 업계와 소비자, 학계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실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