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15주기]‘파우스트 콤플렉스’···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생존에의 의지’

2016-03-20 10:42
아산의 생애 (상) - 아산과 한국 자본주의

서산 간척사업 최종 물막이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아산(1984년 2월)[사진=아산정주영닷컴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1일은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영면한 지 15주년을 맞는 날이다. 아산의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은 시대의 흐름과 상관 없이 한국 경제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길의 지향점은 어디가 되어야 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3회에 걸쳐 아산의 업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글 싣는 순서>
(상) ‘파우스트 콤플렉스’···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생존에의 의지’
(중) ‘부유한 기능공’···중산층 사회 등장
(하) 정치의 한계···국익을 위한 경제성과로 극복


“악취가 나는 썩은 늪의 물을 몰아내는 것이
마지막이면서도 최대의 공사가 되리라.
이로써 난 수백만의 백성에게 땅을 마련해주는 것이니,
안전치는 못할지라도 일하며 자유롭게 살 수는 있으리라.”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한 대목이다. 파우스트는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해안의 광대한 늪지대를 간척사업을 통해 비옥한 토지로 변환시키면서 자연을 아름다움 또는 신비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인지하고, 인간 노동의 창조적인 힘으로 파도의 지배영역을 몰아내고 거기에 인공낙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낡은 것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폭력과 파괴를 감행하기도 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동원과 집중을 수행해 괄목할만한 객관적 성취를 이뤄낸 반면, 민중과 근로자들의 권익은 억압받아야 했던 한국의 20세기 산업화 과정은 파우스트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홍중 서울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논문‘자본주의의 마음-아산의 파우스트 콤플렉스’을 통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의 권익을 억압해야만 했던 상황을 ‘파우스트 콤플렉스’라고 칭했고,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바로 파우스트 콤플렉스를 발현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적 파우스트 콤플렉스,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의 깊은 곳에는 ‘아버지’라는 핵심적인 상징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서산농장의 의미는 수치로 드러나는, 혹은 시야를 압도하는 면적에 있지 않다.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 뼘 한 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뒤늦은 선물이다.”

서산 천수만 간척사업을 성공시킨 후, 아산은 이렇게 말하며 “서산농장은 내겐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 만의 성지(城地) 같은 곳이다”고 전했다.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건설한 서산 방조제 공사. 1억5537만㎡(4700만 평)의 바다가 대규모 농지로 변했다.(1984년 2월)[사진=아산정주영닷컴]


즉, 한국의 파우스트 콤플렉스,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그의 아버지가 겪었던 좌절, 미래의 전망 없이 지겹게 회귀하는 생존의 위협,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고되고 노동하면서도 자연과 역사의 힘 앞에 굴복하고 살아가야 했던 삶의 비참, 전근대 한국 사회의 좌절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생존에의 의지’가 있다.

김 교수는 “‘아버지’는 아산의 성공적 ‘생존’의 증인이자, 그 성취를 인정해줄 수 있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자신의 삶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생존’이었기 때문이다”고 단언했다. ‘현대정신’ 혹은 ‘아산정신’의 깊은 곳에는 부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저 ‘생존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아버지 시대의 고통을 벗어나겠다는 집념이 있었다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기업을 해왔다는 변명의 논리가 있다. 민족, 국가, 가족, 기업의 생존 위기가 발전 논리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고, 유일한 존재의미로 등극시키는 한국 근대성의 아이러니는 바로 ‘생존’ 프레임의 절대적 성격에 있다는 것이다.

새벽 출근길, 남대문을 지나칠 때 한 부부가 그날 팔 물건을 손수레에 받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시장 골목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아산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설명할 길 없는 존경과 유대감을 느꼈다. 사실 그 때 우리 임직원 모두는 똑같은 사명감과 일체감 속에서 다 같이 눈물겹게 분투했다. 정신은 계량할 수도,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정신이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회상했다.

이 회상에는 발전국가의 리더 박정희와 발전연합의 한 주체인 기업가 아산,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민초 모두 각자가 꿈꾸는 생존·발전을 위해 고투하는, 인상적인 한국 근대성의 소망상(所望象)이 제시되어 있다. 아산 자신은 이 그림 속에서 국가와 민중의 절묘한 매개자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으로 민중의 생존투쟁에 연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자로 스스로를 표상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정신’은 생존을 향한 열망과 불안에 기초한 ‘발전주의’로 볼 수 있으며, 기업가 아산의 사몽(私夢)은 당시 사회에 공유된 꿈이었던 공몽(共夢)과 결합하고, 이는 결국 발전국가의 꿈인 공몽(公夢)으로 수렴돼 한 시대의 신화를 구성했다.

김 교수는 “아산의 개인의 꿈인 발전하는 인간, 빈대처럼 노력해 성공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그의 시대적 이데올로기였던 국가적 발전주의(公夢)와 결합해 그룹 ‘현대’의 성공으로 귀결되었고, 이는 당시의 대다수의 민중들의 생존에 대한 열망, 가난과 빈곤의 극복 열망(共夢)을 지도하며, 그런 씨앗-자본에 의해 연료를 제공받았다”면서 “상이한 차원의 꿈들의 접합이 이와 같은 산업화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정주영이라는 한 인물을 이끌어간 ‘파우스트 콤플렉스’의 핵심이자, 한국 자본주의의 마음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