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탄생 100주년]“‘남들보다 훨씬 빠른’ 노력하면 학벌 극복할 수 있다”

2015-11-23 11:54
아산과의 가상 인터뷰 (8)

고향 강원도 통천의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사진. 넷째줄 왼쪽 세번째가 15세의 아산 정주영(1930년). 아산의 조부는 마을의 훈장이었고, 아산도 조부의 서당에서 3년 동안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을 받았다. 보통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밭일을 해야했던 아산은 성적이 언제나 상위권이었으나 음악과 서예를 못해서 항상 2등이었다. 아산은 후에 "밭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시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1월 25일은 아산(峨山)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 기업가 정신의 최정점에 있는 그가 현역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축복된 자리이지만 2015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업가 정신마저도 쇠퇴해 버렸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만약 아산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상 인터뷰로 정리했다.

-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는 힘든 것인가?
▲=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라고 한다. 물론 제가 사업을 할 때에도 학벌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굳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명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다들 생각한다. 어느 대학교의 문을 들어서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이미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도 이제는 현실적이지 못하게 되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갈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교육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이 점점 심해져 간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말로 힘이 든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내가 사업을 해서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당시 사회가 발전하지 않았으니까 못 배워도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훨씬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왠만한 학생들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명문대와 비명문대의 격차는,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소학교와 명문대의 격차와 비교한다면 훨씬 적은 격차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불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이 유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노력을 해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명문대를 나온 사람과 똑같이 노력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더 유리한 곳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한창 뛰어 놀고 싶은 10대 시절에 밤을 세워가면서 공부를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몇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가면서 따라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학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생활 속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습득하고, 더 빨리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저 학벌만 믿고 놀지는 않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학교에 간 사람들은 학교를 나와서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남들보다 훨씬’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어야 한다. ‘따라 잡는다’는 말은 남보다 더 빨리 뒤를 쫓는다는 것이다. 남과 똑같은 속도로 쫓아가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뒤만 쫓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선진국과 큰 격차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의 자세와도 같다. 선진국과 똑같이 노력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저만치 앞에서 뛰어가는 선진국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이 50년 걸려서 한 일이라면 우리는 10년 만에 해야 하고, 선진국이 10억원을 들여서 한 일이라면 우리는 1억원으로 해내야 안다. 분명한 것은, 공부든 사업이든 불리한 쪽에서 유리한 쪽을 따라잡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더 어려워질 수는 있지만 결코 ‘가능성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 바꿔 말하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더 많아지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를 떠난 뒤라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나중에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저 역시도 잠깐이나마 변호사를 꿈꾸면서 공부했던 법에 대한 지식이 나중에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어린 시절 서당에서 배웠던 한학은 살아가면서 삶의 지혜를 깨닫는 데 큰 밑천이 되었다. 부기학원에서 배웠던 장부 정리 지식이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쌀가게 점원 시절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모두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제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배워서 손해될 것은 없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포용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대학교 전공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폭이 넓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남보다 더 노력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내가 훨씬 더 노력하고 잘 하는데도 사람들은 학벌 좋은 사람만 인정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져가고, 빨리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그동안 들었던 노력은 결국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이다.

제가 농사만으로는 언제까지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서울로 도망쳐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찾아오셔서 나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하셨다. 두 번, 세 번을 도망쳐도 아버지는 그 때마다 저를 인정하지 않고 기어이 데리고 내려왔다. 만약 두세 번 도망쳐 나왔다 아버지에게 붙잡혀 고향에 내려왔을 때, 꿈을 포기하고 고향에 눌러 살았다면 현대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네 번째로 고향을 도망쳐서 쌀가게에 취직하고, 자리를 잡은 뒤에야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선입견을 깨고 인정을 받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계속 부딪쳐서 노력해야 한다.
<출처: 현대경제연구원(2011),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