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탄생 100주년]“소학교 학력의 한, 평생 공부로 풀었다”

2015-11-23 11:33
아산과의 가상 인터뷰 (7)

1930년대 초, 아산 정주영과 동생 정순영(오른쪽부터). 이 시기 아산은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소설 '흙'에 심취했다. 아산은 이 소설의 이야기를 실화라고 여겼고 주인공 허승처럼 고등고시를 합벽해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때 익힌 법률 지식들이 훗날 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1월 25일은 아산(峨山)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 기업가 정신의 최정점에 있는 그가 현역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축복된 자리이지만 2015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업가 정신마저도 쇠퇴해 버렸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만약 아산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상 인터뷰로 정리했다.

- 가난 속에서 소학교밖에 마치지 못하셨는데, 아쉬움은 없는가?
▲= 일말의 아쉬움조차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저는 워낙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지라 소학교밖에는 나오지 못했다. 소학교 때는 제법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제가 당신의 뒤를 이어 농사일을 해서 아우들을 결혼시키고, 결혼할 때 논밭이라도 얼마쯤씩 떼어서 보내기를 바랐다. 정규교육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배
우지 못한 한이 있었기 때문에 아우들이 공부하기를 원할 때, 대학교든 유학이든 힘닿는 대로 적극 밀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제가 배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서당에서 3년 동안 ‘소학’, ‘대학’, ‘자치통감’, ‘오언시’, ‘칠언시’ 같은 것 등이다. 소학교를 나온 뒤에는 집에서 소 판돈 70원을 훔쳐들고 서울로 와서는 부기학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고향에서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을 보고는 주인공 허숭 변호사와 같은 삶을 동경하면서 나중에 서울에서 노동을 할 때 법학책을 사서보고 ‘육법전서’를 외웠다. 보통고시까지 쳤지만 보기 좋게 낙방을 했고, 변호사 꿈은 그것으로 접었다. 비록 정규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는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그 좋은 면을 행복으로 누릴 수 있는 소질이다. 학업을 더 계속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아버지를 따라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그 처지를 불평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사회 경험 속에서 차차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 교과서에서 배우는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는 늘 하루하루를 배우고 발전하는 나날로 보냈고, 저 보다 나은 면이 있는 사람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그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려고 했다. 책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으니, 저는 평생을 학생으로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의 일생을 주목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렇다 할 학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사람도 해내지 못한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궁금해서가 아닐까 한다. 또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움의 뜻을 펼쳐보지 못한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현재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큰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제 삶을 견본으로 삼아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매진하여 크게 발전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저처럼 힘들고 고달픈 성장과정을 겪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우리의 자녀들은 마땅히 우리의 따뜻한 손길에서 자라나야 한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교사가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어 온전한 민주교육이 이 땅 위에 뿌리 내려져야 한다. 자유가 무엇이며, 민주가 무엇인가를 옳게 가르치고, 또 보여주면서 내일의 선진조국을 걸머지고 나갈 청소년 교육에 합심하고 노력해나가야 한다.
<출처: 현대경제연구원(2011),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