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빚 권하는 사회, 빚 안지는 사회
2016-03-07 18:01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그 근방을 떠돌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처음 접한 정보를 기준으로 후속 정보들을 판단하게 된다. 일종의 판단 왜곡현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금융권을 취재하면서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현재 금융권 최고 이슈는 단연 ‘중금리대출’과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다. 금융당국은 이 두 가지 정책 모두가 서민들의 고통을 경감(?)해주는 방안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팩트 측면에서는 맞는 말지만 앵커링 효과 관점에서 보면 사고의 왜곡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을 통해 돈을 빌리면 3~5% 내외의 이자를 물다가, 은행에서 거절당하는 순간 대출금리가 곧장 20%대 초반으로 급상승한다. 소위 ‘금리단층’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내놓은 제도가 중금리대출 활성화 대책이다. 10%대 중금리 대출시장을 키워 중신용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법안도 마찬가지다. 기존 연 34.9%의 최고금리를 27.9%까지 끌어내렸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총 330만명에게 최대 7000억원의 이자 경감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의 친서민(?)정책에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우리사회는 빚을 지지 않는 것보다 얼마나 더 싸게 빚을 지는 것에 매몰돼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인들에게 이미 빚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고 아무도 이런 앵커링 효과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도 빚 권하는 사회에서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빚 안지는 사회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닻을 올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