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남용되는 TV 자막 규제해야 할 때다

2016-01-10 11:12
김경수 문화부장·골프전문기자

 

김경수 문화부장겸 골프전문기자                                                                         [사진=아주경제 DB]




“지상파·유선방송 할 것없이
시청자 눈 사로잡으려는 듯
무분별·부적절한 자막 천지

국민 지적수준 하향화 선도
‘자막 상한제’라도 둬야할판
방통위는 도대체 뭐하는지”





문자(文字) 전성시대다. ‘공자 앞에서 문자쓴다’의 문자가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오가는 문자 말이다. 남녀노유 할 것없이 모바일 기기를 들여다보며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받은 문자를 보고 미소짓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요즘엔 TV도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문자)이 뜬다. 뉴스나 통역 등 일부에서만 문자를 띄웠던 예전과는 판이하다. 잠깐이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프로그램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듯하고, 큰 일이라도 날 것같다. 그런 까닭에 시청자들은 화면을 보랴, 자막을 보랴 2중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걸 노리고 지상파 방송이든 유선방송이든 자막을 ‘무제한’으로 송출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이렇게 해서 뜨는 자막의 상당 부분이 맞춤법이나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면 내용과 동떨어진, 프로그램 제작자 개인의 생각을 자막으로 표출하는 일도 많다.

지난 3일 초저녁에 TV를 켜봤다. 주말 그 시간대에 으레 그렇듯 고만고만한 연예인들이 나와서 우스꽝스런 행동이나 말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두 프로그램을 10∼20분 시청했는데,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막이 한 둘이 아니었다.

KBS 2TV에서 하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은 자막의 절반 정도가 어법에 맞지 않거나, 제작진 자체의 조어(造語), 얼핏 이해가 안가는 약어(略語), 국적불명의 혼합어 등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왕서운’(서운함이 많다는 뜻) ‘꾸준히 건넌 탓에 목적지가 눈앞’(탓은 결과가 잘못될 경우에만 쓰는 말임) ‘독보적 최하위’(독보적은 ‘남이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을 일컬음) ‘육회를 한가득 담아’(가득이라고만 하면 됨) ‘거기에 심지어’(둘 중 하나만 쓰면 뜻이 통함) ‘조으다’(좋다) ‘싱기하다 발자국이야’ ‘without 밥 육개장 한사발 푸짐’ ‘기승전 초코’ ‘하지마 ㅠ ㅠ’ ‘후덜덜’ ‘1박2일 역대급 성찬’(사상 최고 성찬) ‘난이도 상’(高) ‘과자 드셈’(드시오)….

20분 정도 보고 지적한 것이 이럴진대, 그 프로그램 전체를 지켜봤더라면 지면이 모자라 다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채널을 돌려 MBC TV의 ‘진짜사나이 해병대 산악대대’를 10분 정도 봤다. KBS 2TV만큼은 아니더라도, 자막이 눈을 어지럽히기는 마찬가지였다.

‘死을 때까지 한다’(죽을) ‘死기만 해봐라’(죽기만). 아래에 물이나 하천이 없는데도 ‘도하 훈련’이라고 한 것은 프로그램을 협조한 군(軍)에서 잘못한 조어라고 하자. 외줄을 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장면인데 ‘몇 발자국 옮기고 기진맥진’ 했다고 표현한다. 줄을 타고 엉금엉금 건너가는데 ‘발자국’이라고 한 것도 잘못이려니와, 발자국 자체의 뜻도 오용됐다. 발자국은 ‘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을 뜻하므로 굳이 이 상황에서 쓴다면 발걸음이라고 써야 했다. ‘오도 가도∼’라는 말은 교통방송의 리포터들의 잘못된 사용 때문에 많이 전염돼버렸다. 이 때는 ‘오지도 가지도∼’ 또는 ‘오기도 가기도∼’라고 써야 정확한 표현이다. 그 방송에서도 역시 ‘오도 가도 못하는 두 해병의’라고 자막을 내보냈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설명 자막을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한다. 방송 작가를 뽑을 때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표준어) 실력을 요구하지 않는 모양이다. 방송의 위력을 생각한다면 방송 작가야말로 한국어와 우리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흥미 위주로, 시청자의 프로그램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TV의 무분별한 자막으로 인해 우리 말과 글이 피폐해지고 있다. 그러잖아도 ‘바보 상자’라는 TV가, 이제는 적절하지 않고 남용되는 자막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적 수준을 하향평준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휴대폰에 적용되는 요금 상한제처럼 TV 프로그램에도 ‘자막 상한제’를 둬야 할 판이다. 그게 안된다면 어법이나 맞춤법에 틀리거나 국적 불명의 자막을 내보낼 때마다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볼만 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