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재산권 묶인 사직2구역 주민들 "사업 제자리 걸음에 손실만 불어나"

2016-01-11 06:00
주민들 "사업 운영비·선교사 건물 매입에 매달 이자만 해도 손실 어마어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사업 제자리 걸음…개발방식 빨리 결정해 주민 부담 완화해야

▲사직2구역 내 주택 모습. 지붕이 무너져 천막으로 덮고 있다. 사진=최수연 기자

아주경제 최수연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곽도시 만들기 사업으로 정비사업이 수년째 표류 중인 종로구 사직2 재개발 구역. 지난 10일 산 언덕을 한참 올라 찾은 이 곳은 곧 쓰러질 것 같은 한옥과 이미 주인이 떠나고 방치된 주택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서울 달동네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 곳은 2009년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착수, 2012년 9월 지상 12층 아파트 456가구로 조성하는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며 사업이 활기를 보였다. 하지만 2013년 아파트 평형을 대형에서 소형위주로 바꾸는 사업시행인가변경을 신청한 이후 사업이 올스톱 상태다.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서울시의 정책방식과 많이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2017년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목표로 앞서 2013년 성곽마을 조성사업에 들어갔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시행 인가당시 1종 일반주거지역을 2종으로 종상향 하는 조건으로 주변 환경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조건을 달았다"며 "하지만 지난달 도시계획위원회 자문결과 변경안은 시가 추구하는 보존 위주의 개발방식과 많이 어긋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심 성곽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서울시의 정책으로 재개발 사업이 중단됐다는 인식 탓인지 금전적인 손실에 대해선 서울시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5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민 김씨(50대)는 "재개발이 시작될 당시 사직2구역 내에 위치한 감리교 선교사 숙소 건물 부지가 포함돼야 재개발 인허가가 날 수 있다는 얘기에 조합에서 250억 가량을 투자해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에 대한 대출 이자만 매달 몇 천만원 가량 나오는 등 사업이 2년2개월 가량 지체하다보니 손해가 어마어마한 상황으로 나중에 분담금 문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존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에서 주민들이 금전적으로 손실한 부분을 보상해줘야 하는거 아니냐"며 "서울시에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그저 사업만 보류하면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답보상태를 보이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대립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일부 주민들은 이참에 재개발 사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직2구역에 25년가량 거주하고 있는 60대 문씨는 "2003년도에는 이곳 집값이 3.3㎡당 2000만원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며 "재개발하게 되면 아파트 층수를 높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진다. 현재 시세로 재개발되면 오히려 손해다"고 말했다.

주민 박씨(60대)는 "한양도성과 성곽 주변 마을을 보존해서 북촌·서촌 처럼 옛날 서울의 모습을 유지해서 관광객 유치하면 땅값도 오르고 좋을 것"이라면서 "사직2구역은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한양도성이 있고 성곽이 그대로 유지돼 있어 옛 조상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마을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직2구역 주민들은 개발방식이 빨리 결정돼 주민들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15년 거주하고 있는 주민 김씨(50대)는 "여기에 세들어살고 있는데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려고 하면 불켜져 있는 집들이 거의 없어 너무 깜깜하다"며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지붕이 무너지고 기반이 다 헐어버린 상태로 장농 등으로 받치고 있는 상태다. 재개발이 하루빨리 시작돼 마을 분위기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주민 김씨(50대)는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집이 대체적으로 넓고 먹고 살 만한 주민들 20~30% 가량이 재개발을 반대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는 해당 지역에 대해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지 않았다. 주민 입장에서는 이제는 재개발이든 보존사업이든 아무거나 빨리 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사직2구역 내 골목길 전경. 사진=최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