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 정유사 25년만에 러시아에서 철수…잘 나가는 서방 정유사 없어
2015-12-23 17:11
아주경제 윤주혜 기자 = 미국 3대 메이저 정유업체인 코노코필립스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특유의 정치 지형, 국제 유가 하락,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러시아 시장에서 서구 정유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노코사는 러시아 정유 시장에 제일 처음으로 뛰어든 외국계 회사다. 지난 1992년 러시아 국영에너지사 로스네프트와 함께 폴라 라이츠란 합작사를 세우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러시아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큰 투자자였다.
그러나 이날 코노코사는 “폴라 라이츠 지분 50%를 매각했다”며 “러시아 시장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혔다. 매입사는 트리즈너리 애셋으로 매입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코노코사의 협력사인 로스네프트도 지난주 지분을 매각했다고 FT는 전했다. 시장은 폴라 라이츠의 가치가 1억5000만~2억 달러에 이렀을 것으로 추정했다.
코노코사가 부침을 겪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러시아 정치 지형이 변하면서부터다. 에너지 문제 분석가인 테인 구스탑슨은 “코노코사는 지자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확대했었으나 중앙 정치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지자체 수준의 커넥션만으로는 사업을 운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때 코노코사는 중앙 정치의 미움을 사 세금 폭탄을 맞았었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서방 정유사는 코노코사만이 아니다. IHS의 러시아&카스피 에너지 부책임자인 매튜 세이거스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진출한 서방 정유회사 중 잘 된 곳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가 에너지 부문을 장악하며 서방 회사의 영업 활동을 제약하고 루블화 가치 하락, 국제 사회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등 잇단 악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러시아 기업과 서방 정유사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경제 제재로 모두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으로 되돌아간 국제 유가 하락은 서방 회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아울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를 강조하며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과 인도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도 서방 정유 회사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BP, 엑손모빌, 슐룸베르거는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정치적 갈등이 해소돼 경제 제재가 해제되길 기다리고 있다. BP는 지난 6월 로스네프트에 7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엑손모빌은 로스네프트와 일련의 합작프로젝트를 체결한 상태다. 슐룸베르거는 러시아 육상 원유시추회사인 유라시아 드릴링의 지분 45%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