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서울역고가 공원화, 도시재생의 진원지로

2015-12-23 10:34
조명래 단국대 교수

▲조명래 단국대 교수. 사진=서울시 제공

1970년에 태어나 차량길로 수명이 다한 서울역고가가 시민들이 거닐고 쉴 수 있는 보행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급기야 정치권으로 확대되어 무슨 대단한 정치적 사안이 되어 버렸다. 서울역고가의 보행길 조성은 '철거 대신 재활용', '보행중심 도시재생' 등 창의적 아이디어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제안자가 대권주자라는 이유로 정치적 색깔이 덧칠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 색깔 씌우기가 나가도 너무 나가 사업이 갖는 최소한의 긍정성마저 못 보도록 우리를 색맹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고가의 공원화에 대한 주민과 상인들의 반대는 고가도로 철거보다 철거로 인한 상권이 위축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문제는 고가도로를 마냥 존치하는 것으로 답을 찾을 수 없고, 대체도로의 확보, 시장 선진화, 서울역 일대의 통합정비 등의 방법으로 풀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서울시의 이러한 계획을 이해하고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역고가 공원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크게 불거진 데는 시민활동가나 전문가의 몫도 적지 않다. 일부 시민활동가들이 '의도는 좋지만 시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는 소통부재를 문제 삼고 있지만 정곡을 찌르는 비판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폐쇄가 이미 결정된 고가활용에 관한 한, 소통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폐쇄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미래의 문제다.

'고가의 공원화'는 다양한 소통과 대화, 창의적 대안의 강구 등을 통해 불확실하고 불투명했던 부분이 거두어 지면서 창발적인 도심재생 프로젝트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 시민, 전문가들의 반발과 문제제기는 이렇게 거듭나게 하는 데 약이 된 셈이다. 그러나 유독 정치권만이 특유의 한국정치에 갇힌 채 고가화 사업에 여전히 그들식 정치적 족쇄를 걸어 놓고 있다.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그리고 시민과 함께 21세기 서울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라도, 이젠 그 족쇄를 거두어야 한다.

분명한 전제가 있다. 안전문제 때문에 고가의 철거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철거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철거 후 가장 큰 문제는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동서 간 단절과 분리, 그로 인한 도심 낙후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점이다. 고가를 녹색의 보행로로 바꾸는 대안은 물리적으로 고가도로의 모습으로 남지만, 차도로서의 용도 폐기를 전제로 하고, 나아가 보행이란 사람중심의 소통과 교통을 이용해 서울역 일대의 동서 간 연계와 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찻길을 사람길로 재생하는 것은 선(線)의 재생을 넘어, 사람중심, 보행, 소통, 연계, 토속경관, 장소성 등을 잇고 녹여 서울역 역세권이란 면(面)의 재생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 도시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속도로 황폐화된 근대 도시공간 속에 내면의 성찰자인 산책자(flaneur)를 끌어들여 몸의 감각으로 공간을 대하고 읽으면서 사람중심 도시로의 복원을 주창한 바 있다. 정치적 족쇄를 거두면 서울역고가는 서울을 ‘21세기 사람중심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진원지로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