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썩은 사과를 먼저 도려내야… VC경영연구소 대표 정인호
2015-11-29 19:12
보편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배려 등의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행동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면 쉽게 흥분된 심리상태로 변해 평소하지 않았던 과감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군중심리(crowd mind)’라고 한다. 군중심리란 집단이나 다수의 힘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태도나 믿음, 행동, 태도 등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일반 개개인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군중 안에 포함되면 절제력을 잃고 자신으로부터 이탈되어 집단이 개인을 지배하는 ‘탈개인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군중심리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가 개인 심리상태와는 다른 고유적 특성을 가지게 된 원인으로 무소불위의 힘, 감염력 등을 들었다. 무소불위의 힘이란 개인이 군중에 포함되면서 개인으로 존재할 때는 할 수 없었던 일까지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민중총궐기 집회 때 일반 시민들이 이성을 잃고 더욱 폭력적인 사람으로 바뀐 이유도 바로 군중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내에 속하게 되면 한없이 잔인해진다.
미국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1971년 실시한 그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Stanford Prison Experiment)’에서 그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심신이 건강한 남자 대학생 24명 중 절반을 죄수로, 나머지를 간수로 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간수의 3분의 1이 폭군으로 돌변해 죄수를 가혹하게 학대했다. 실험은 단 엿새 만에 중단됐다. 실험 전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짐바르도는 2004년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했다는 사건을 접하고, 실험이 현실이 된 상황에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003년 한 연구에선 과거 100년간 피험자 800만명을 포함하는 총 2만5000편의 사회심리학 실험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 맥락이 인간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는 데 일관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군중심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책임감의 부재다.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개인적인 책임감은 줄어들게 된다. 혼자 폭력을 쓰게 되면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지만 집단의 일원이 되면 사람 수만큼 책임이 분산되어 더욱 폭력성이 짖어지게 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싱싱한 사과를 썩은 상자 안에 넣어두면 자연히 썩게 마련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든 죄에 집중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을 악랄한 인간으로 순식간에 둔갑시키는 상황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슈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지난 25일 정부는 시위대를 복면 쓴 IS에 빗대며 ‘복면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러한 행위는 전형적으로 죄보다는 사람을 미워하는 정책이다.
즉, 썩은 사과가 몇 개 있다고 해서 궤짝 째 버리는 우(愚)를 범하진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이 폭군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이슈의 해결이 우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