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巨山’ 마지막 길, 눈발 속 영결식 엄수…‘통합·화합’ 과제 남기다
2015-11-26 20:00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가곡 '청산에 살리라' 중)
거산(巨山)이 떠났다. 민주화의 '큰 별'이 졌다. 떠난 뒤에 소중함을 느낀다 했던가. 그가 태어난 거제도의 겨울 하늘도, 정치의 중심 서울 여의도도 애달파했다. 때마침 하늘에선 올 겨울 들어 첫 눈발이 흩날렸다. 하늘도 산도 엄숙했다. 거산은 떠났지만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향한 그의 신념만은 우리의 가슴을 울렸다. 누구는 탄식했고, 다른 누구는 슬퍼했다.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거산의 육체는 영원한 작별을 고했지만, 그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만은 영원불변하리라.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헌정 사상 첫 국가장이다.
거산의 영결식은 '최고 예우'를 갖춰 진행됐다. 다만 정부는 "검소한 장례를 치르도록 해달라"는 유족 측의 요청으로 정부 측 초청 인사를 5000명으로 제한했다. 이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때의 9000명보다 4000명 줄어든 수치다. 전체 영결식 참석자 수도 김 전 대통령(2만4000명) 영결식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실제 그랬다. 거산 영결식은 '검소·경건·통합·화합'으로 치러졌다. 노제도 추모제도 없었다. 장례위원회 2222명은 각계각층을 총망라했다. 김 전 대통령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지만, 영결식만큼은 4대 종교(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의식 행사를 가졌다. 영원한 동지이자 맞수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도 함께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군 의장대 도열병의 '받들어 총' 의식으로 고인을 맞은 영결식은 김동건 아나운서의 개회식 선언을 시작으로 △약력보고(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조사(황교안 국무총리) △추도사(김수한 전 국회의장) 순으로 진행됐다.
이윽고 김 전 대통령의 영상자료가 5분간 상영됐다. 신군부 시절인 1985년 2월 가택연금을 당한 김 전 대통령은 "날 감금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마음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라고 말했다. 고인이 생전 영상이 상영되자마자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차남 현철씨는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이후 상주 및 직계유족의 헌화·분향에 이어 바리톤 최현수씨가 추모곡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면서 영결식의 엄숙함은 더해졌다. 1시간 20분간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상도동 사저와 기념도서관을 거쳐 서울 현충원으로 향했다.
한편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 도서관에서 YS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열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 자리에는 국회 조찬기도회장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홍 의원은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산 증인이자 민주화의 표상인 YS는 우리에게 통합과 화합의 실천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겨줬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군정종식이라는 신념과 의회 민주주의 원칙 앞에서 그의 말은 단호했고 행동은 전격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