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고령화 시대는 또 다른 기회…"이제 디펜드로 성인용 시장 만듭니다"
2015-10-30 08:33
-30년간 한 우물…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한킴벌리 본사는 매일 오후 7시만 되면 건물 전체가 암흑 속에 잠긴다.
직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CEO의 결단이다. 때문에 퇴근시간만 되면 보고서를 올리라는 직장선배도, 칼퇴하는 직원에게 눈치 주는 부장도 없다. 오히려 야근하는 직원들이 눈치를 봐야할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최규복 사장(60)이 취임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최 사장은 "가정은 직원들의 제2의 학습터"라며 "행복한 직원들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기업의 바탕은 건강한 직원들이라는 믿음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셈이다.
최 사장은 5년째 정시 퇴근 원칙을 지키고 있다. 많을 때는 하루 10번이 넘는 회의와 토론에 참석해야 하지만 야근은 절대 없다. 회사가 도입한 가족친화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선 CEO부터 나서야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가정을 잘 경영하지 못하는 사람이 기업을 어떻게 잘 경영하겠느냐"며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칼퇴'하고 주말은 집안일을 하거나 가족들과 등산, 외식을 하면서 평범하게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협동과 소통지수를 높이기 위해 '변동 좌석제'를 운영하자고 제안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시간과 공간이 유연해지면 창의적인 사고도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며 "직원들의 행복지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의 노력으로 유한킴벌리는 직원 소통지수가 2010년 65%에서 지난해 84%로, 업무 몰입도는 76%에서 87%로 올랐다. 유연한 근무환경과 수평적인 사내분위기 탓에 여성직원 비중도 타 회사를 압도한다.
지난해 이 회사의 신규 여성직원과 여성임원 비중은 각각 50%, 20%를 달성했다. 국내 50대 기업의 평균 여성임원비중이 2%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유한킴벌리를 1순위에 꼽는다.
◆ 한 우물만 30년…한국 유아용품 업계 산 증인
그는 1980년대 유한킴벌리 마케팅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유아용 위생기저귀 '하기스'를 성공시킨 인물이다. 입사 후 그가 맡은 첫 품목은 기저귀였다. 천 기저귀가 익숙했던 당시에는 '일회용 기저귀를 쓰는 여자 = 낭비벽이 심한 여자'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최 사장은 "당시만 해도 절약이 미덕이던 시대라 사회적 분위기가 일회용 제품을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며 "소비자의 편견과 싸우면서 기존에 없던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루도 편하게 잠들 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눈치보니라 일회용 기저귀를 안쓰니까 하기스의 경우 초반에는 성장이 매우 어렵고 더뎠다"며 "3~4년간 매출이 정체됐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변화는 맞벌이가 일반화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도심 생활환경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위생관념이 강화되고, 빨래 널 공간이 마땅치 않자 일회용 기저귀 수요가 늘었다.
그는 "월 평균 매출이 60~70% 수준에서 머물다가 90년대부터는 어느 해에는 200% 성장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다"며 "생활용품 트랜드는 시대적 분위기,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간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하기스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당시 국내 기저귀 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던 미국 및 일본 경쟁업체들은 철수하는 굴욕을 겪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하기스는 유한킴벌리 대표 상품이자 성장의 1등 공신이다.
최 사장은 하기스 성공을 발판으로 2003년엔 대주주인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유아용품사업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에서 유아용 기저귀 30년 '외길'만 파고든 전문가는 그가 유일하다.
◆ 중국 프리미엄 시장 선도할 것
유한킴벌리는 최근 5년간 수출금액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2345억원의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유한킴벌리 전체 매출의 17%에 육박한다.
유한킴벌리는 한국기업인 유한양행과 미국기업인 킴벌리클라크의 합자 회사다. 킴벌리클라크의 경우 중국에도 법인이 있지만 현지에서 팔리는 프리미엄 제품 대부분은 한국에서 생산된다. 한국기지가 킴벌리클라크의 아시아권 수출 전초기지인 셈이다.
최 사장은 “한국 소비자의 깐깐한 평가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합자회사임에도 수출 규모가 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중국시장에 최초로 프리미엄 기저귀로 시장을 창출하고, 처음부터 생활수준이 높은 베이징, 상해, 광저우, 청도 등 거점 4개 도시에 집중한 것이 성공요인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중국에서 한국식 육아를 따라하고, 한국산 제품이 '프리미엄'이 붙는 만큼 현지 고급 유아용품 시장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유한킴벌리가 만든 기저귀는 엄마들의 득템 1순위로 꼽힌다. 입혀보면 다르기 때문이다. 흡수력·통기성·착용감·샘방지·착용감·두께·냄새·디자인·신축성·뒤처리 편리성 등 모든 게 연구대상이다. 이 같은 꼼꼼한 조사가 한국산 기저귀를 명품 반열에 올렸다.
최 사장은 "흡수력이 좋다는 것도 단순히 흡수를 더 많이하는 게 아니라 통기성과 소변 베어남, 보송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R&D공간인 이노베이션센터를 확대설치하고 매년 수만명의 품질테스트를 거쳐 혁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은퇴 후 할일 찾는 CSV 확산 시킬 것
그는 요즘 '시니어'라는 화두를 놓고 깊은 궁리에 빠져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시대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인 시니어 계층을 공략해야 기업의 미래기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잠재력이 있는 시니어 기업을 발굴해 마케팅과 연구개발, 생산 등을 지원하면, 기업도 성장하고 고령화로 인한 저생산성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에 2012년부터 기업 내 공유가치경영(Creating Shared Value·CSV)전담팀을 만들고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기업이 양질의 실버 일자리를 제공하면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경제 파이 확대와 정부의 복지비용도 줄이는 1석 3조의 효과"라며 "저성장 시대에 시니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우리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한킴벌리가 개발 한 첫 모델은 시니어 관련 소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대상이다. 또 중소업체가 제품을 만들 때 시니어 채용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시니어 채용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폴랑폴랑(치유동물을 통한 시니어 치유)' '제타랩(시니어 인생 재설계 아카데미)' 등 12개 기업이 선정됐다. 현재 이 회사는 204개의 시니어 일자리와 26개 소기업을 육성했다.
최 사장은 "고령화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시니어 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도우면 이들의 구매력이 생기고, 관련산업이 커지면서 다시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실금 팬티인 '디펜드 스타일 팬티(요실금 팬티)'도 CSV 활동의 대표 상품이다. 요실금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외부로 밝히기는 꺼려지는 증상이다. 유한킴벌리가 내놓은 디펜드 스타일 팬티는 속옷 대신 입는 제품으로 겉으로 표시 나지 않아 시니어층의 사회생활과 여가, 취미 활동을 돕는다.
그는 "과거에는 생리대를 사러 약국에 가면 검정봉투에 담아 안보이게 줬는데 요즘 마트 쇼핑카트에 아무렇지 않게 담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요실금 팬티도 지금은 수치스럽게 생각해 안입는 사람이 많지만 언젠가 시장의 인식이 바뀌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노년층이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시니어 제품을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판매공간도 만들었다. 실버영화관 운영도 지원하고 있는데 연간 2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이를 통해 연간 180명가량의 실버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