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건륭제부터 시진핑까지, 중영관계 200년의 질곡

2015-10-26 16:43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왕실의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검궁으로 들어가 영국 여왕과 환담하던 시진핑(習近平) 주석. 캐머런 총리의 만찬에 이은 맥주집 회동과 명문 축구단 맨체스터시티 방문 배석까지. 지난 19일부터 23일(현지시간)까지 시 주석의 국빈 방문에 영국은 그야말로 극진한 예우를 펼쳤다.

양국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함께 '황금시대'를 열어가겠음을 대외에 선포했다. 과거 중국에 떠올리기 싫은 치욕을 안겨줬었던 영국은 이제 서방세계에서 가장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청나라 건륭황제에서 시진핑 주석까지 양국 관계의 변화상을 10개 장면으로 정리해본다.
 

청나라 건륭황제를 알현하고 있는 조지 매카트니 일행.[사진=바이두]


◆건륭제 83세 생일연의 매카트니

청나라 건륭(乾隆)제 57년인 1792년, 영국은 조지 매카트니를 전권대사로 하는 방문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중국산 차와 실크로 인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이어가던 영국이 중국에 먼저 손을 내민 것. 영국 방문단은 증기기관, 방적기, 무기, 선박모형 등 최신 발명품을 선물로 가져갔다. 

건륭제와 매카트니의 회견은 건륭제의 83세 수연(壽宴) 장소인 청더(承德) 피서산장에서 열렸다. 매카트니는 중국의 한 섬을 지정하여 영국 상인들이 거주하고 화물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기했다. 이에 건륭제는 영국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으며, 영국 상인들이 중국의 규정을 어길 경우 즉각 추방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빈손으로 영국에 돌아온 매카트니는 "청나라는 강한 것 같이 보이지만, 부패가 심하고 쇠약한 나라이며, 일격에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편전쟁에 중화사상 무너져

영국이 만든 아편이 중국 대륙에 성행하며, 중국인들을 병들게 하자 흠차대신 임칙서(林則徐)가 1839년 광둥성 내 영국상인들의 아편을 몰수해 바닷물에 폐기처분했다. 이후 양국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영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에 원정군 파견을 결정했다. 

1840년 6월 영국은 군함 47대와 4000명의 군대를 동원해 광둥(廣東)성 주장(珠江)입구 해역을 봉쇄했다. 영국군 앞에 중국의 군대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처참한 패배를 안겨준 영국군은 북상해 창장(長江)하구를 봉쇄하고 톈진(天津)까지 진출해 청나라를 위협했다. 전쟁은 2년동안 이어졌고, 중국군은 압도적인 참패를 거듭했다.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던 모습.[사진=바이두]


◆중국 굴욕의 시작, 난징조약

1842년 영국군은 상하이(上海)를 점령한 후 난징(南京)으로 진격했다. 압도적인 힘의 열세로 인해 결국 1842년 8월 영국군함의 선실에서 역사적인 '난징조약'이 체결됐다. 조약을 통해 홍콩이 영국에 할양됐으며, 중국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 조약은 중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며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이 자랑스러워하던 중화사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양 열강들이 중국을 거리낌없이 잠식해 가는 본격적인 중국의 '굴욕'이 시작된다.

◆3일동안 불에 탄 원명원

그 뒤 영국의 중국 침략이 더욱 거세졌고, 중국인들의 반영감정은 하늘을 찔렀다. 각지에서 극한대립상태가 벌어졌지만 결과는 중국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불과 2만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베이징을 점령하고 황제의 별장인 원명원(圓明園)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원명원의 불은 3일동안 꺼지지 않았고, 그 부근의 정원과 별장이 모두 폐허가 됐다. 환관, 궁녀, 장인들이 화재속에 죽어갔다. 원명원 사건은 중국인에게 아직까지 치욕으로 여겨지고 있다.

◆1972년 두손 잡은 양국

영국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관여도를 줄여갔다. 1950년 영국은 서방 국가들 중 최초로 신중국을 승인했다. 우여곡절끝에 1954년 베이징에 영국의 임시대표사무처가 설치됐다. 1967년에는 베이징의 영국대표처 건물들이 홍위병의 공격으로 불에 타기도 했다. 양국관계가 대사급으로 승격된 것은 1972년이다. 당시 영국은 대만을 중국의 지역으로 인정했으며, 대만에서 공식기구를 철수시켰다. 이로써 양국은 전면적으로 수교하게 됐고, 양국관계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1982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됐던 덩샤오핑과 대처 영국 수상의 회견모습.[사진=바이두]


◆덩샤오핑과 대처의 기싸움

1982년 9월 '철의 여인' 대처 영국 수상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덩샤오핑(鄧小平)과 마주 앉았다. 1898년 양국이 맺은 확장전문조약에 의거 1997년으로 예정된 홍콩 주권 반환 문제가 의제였다.

대처 수상은 홍콩 주권이양을 늦추려 했지만 덩샤오핑은 "주권 문제는 협상의 여지가 없으며 1997년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처 수상이 "그렇게 되면 홍콩에 재난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자, 덩샤오핑은 "중국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으며 그 재난에 용감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회담 후 대처 수상은 인민대회당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발을 헛디뎌 주저앉고 말았다. 

영국은 이후 '주권은 이양하되 통치권은 보유하겠다'는 카드를 내세웠지만 중국은 '홍콩 주권을 조기회수할 수도 있다'며 강력대응했다. 1984년 영국은 결국 홍콩을 중국에 넘기는 연합성명에 서명했다. 중국인민들은 환호했다.
 

1986년 방중해 병마용을 직접 둘러보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사진=바이두]


◆엘리자베스 여왕의 중국여행

1986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역사상 영국 군주의 첫 중국방문이었다. 10월 12일 오전 당시 리셴녠(李先念) 중국 국가 주석이 인민대회당 동문에서 성대한 의식으로 영국 여왕을 환영했다. 여왕은 함께 방문한 남편 필립공과 함께 덩샤오핑과의 만찬에서 중국 전통요리 '불도장(佛跳牆)'을 함께 먹었다.

중국 방문 기간 여왕부부는 베이징 자금성, 만리장성을 참관했고 시안(西安) 병마용에 감탄했다. 상하이 황푸(黄浦)의 놀이공원을 참관했고, 윈난(云南)성에서 소수민족 여성과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홍콩 반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이후여서 중국 인민들은 여왕을 따뜻히 맞았다.
 

1997년 홍콩에서 개최됐던 홍콩주권 반환의식.[사진=바이두]


◆150년만의 경사, 홍콩반환

1997년 4월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진주했다. 동시에 영국군은 약 150년만에 홍콩에서 철수했다. 그해 6월30일 23시42분부터 7월1일 0시12분까지 중국과 영국 양국 정부의 홍콩주권 인계의식이 진행됐다. 인계의식에 참석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이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했다"고 선포했다. 이날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가 정식으로 성립됐다. 과거 홍콩 총독부의 기구와 인원은 특별행정구 정부에 편입됐다. 중국인들은 감격스러워했고, 홍콩반환을 보고 눈을 감겠다고 했지만 이에 앞서 1997년 2월 타계한 덩샤오핑을 떠올렸다.

◆장쩌민 방문, 관계격상

홍콩 반환 2년후 1999년 10월18일부터 22일까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영국을 국빈방문했다. 1986년 엘리자베스 여왕 방중에 대한 답방 형식이었으며, 중국의 국가 원수로는 첫 영국방문이었다. 영국 여왕은 성대한 환영 의식으로 장쩌민 주석을 맞았다. 중국과의 관계강화를 위해 노력하던 토니 블레어 총리와는 달리, 중국의 인권문제에 항의하는 뜻으로 찰스 왕세자가 귀빈만찬에 불참해 중국측으로부터 섭섭함을 샀었다. 하지만 장 주석의 방중은 양국관계가 격상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시진핑 주석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황금마차를 타고 영국 런던 버킹검궁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시진핑에 대한 극진한 환대

영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밤 런던에 도착해 23일까지 4박5일동안 영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영국은 그야말로 극진한 환대를 했다. 20일 41발의 예포가 발사된 가운데 왕가 기병대 열병식장에서 환영의식이 열렸다. 이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으로 이동해 여왕이 주최하는 비공식 오찬과 만찬에 참석했다. 식사메뉴와 함께 모든 장식상태를 여왕이 직접 점검했다. 시 주석은 버킹엄궁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며 필립공,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등 왕실 가족들을 만났다.

21일 영국 의회에서 연설했으며, 캐머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주석의 방영 일정에서 무려 한화 70조원 규모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이 체결됐다. 두 정상은 함께 중국과 영국 양국의 '황금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양국은 '21세기를 향하는 글로벌 전면적 전략동반자'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 용어는 이날 최초로 등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시 주석과 함께 맥주집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했으며 이튿날 함께 맨체스터시티의 트레이닝구장을 방문했다. 영국의 극진한 환대는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