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과학자 격려하는 문화가 우선이다

2015-10-19 10:42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1929~43년 사이 쓰인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문화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파했다.

문화는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형성된다. 문화로 굳어진 그 집단만의 독특한 특징이나 분위기는 집단지성을 지배한다. 특정 집단이 형성한 문화는 구성원들의 응집력, 목적 달성 능력, 퇴행의 정도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집단역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문화는 중요하다. 한 집단에 속한 여러 구성원의 협력 또는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결과가 그 집단의 ‘문화’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상 시즌이 끝났다. 각종 매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10월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똑같은 프레임의 기사를 쏟아냈다. 옆 나라 일본은 21번째, 중국은 첫 노벨 과학상을 받았는데 우리는 여전히 ‘0’이라는 것이다. 한국 과학계의 ‘굴욕’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과연 그럴까. 이미 과학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일본이나 경제 대국인 중국의 연구환경은 우리나라와 질적·양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벨상은 단기 성과보다 긴 시간을 들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분야에 주는 상이다. 연구 결과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필요한 탓이다. 노벨상을 받은 나라들의 '연구 문화'를 보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장기간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보고 그 기간 안에 성과물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과학자를 향한 사회적 대우도 다르다. 창의적인 과학자를 격려하기보다는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더 좋은 것인 양 종용하기도 한다.

과학 강국이 되려면 과학자를 위한 문화를 만들어놓은 것이 우선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지 말고 과학자들이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과학계 전반에 퍼졌을 때 이공계 기피 현상 해결은 물론 노벨상이라는 ‘부상’(副賞)도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