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치마폭에 아버지 글을 썼네…다산 정약용 '하피첩' 공개
2015-10-14 08:23
국립민속박물관, 지난 9월 경매로 7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병든 아내 낡은 치마를 보내, 천리 먼 길 애틋한 마음 부쳤네. 오랜 세월에 붉은 빛 이미 바래니, 늘그막에 서글픈 생각뿐이네. 마름질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써보았네. 부디 어버이 마음 잘 헤아려서, 평생토록 가슴 깊이 새겨 두기를"
1810년 천주교를 믿은 죄로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에 남아있던 부인 홍씨로부터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받았다.
다산은 이 치마를 잘라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선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을 전하는 작은 서첩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보물 제1683-2호 '하피첩(霞帔帖)'이다.
당시 프로그램의 감정위원들은 감정가로 1억원을 매겼다. 이후 김민영 전 부산저축은행장이 소유로 남아있다가 지난 9월14일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열린 고서 경매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당시 경매에 나온 보물 고서적 18점 가운데 하피첩은 최고가인 7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3일 박물관 내 영상채널 스튜디오에서 하피첩을 언론에 공개했다.
크기는 각각 가로 14.4∼15.6㎝, 세로 24.2∼24.9㎝, 두께 2.0㎝로 원래 다산이 제작한 것은 네 첩이었으나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유한 것은 총 세 첩이다.
치맛감인 비단과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거의 반반의 비율로 사용해 만들었다.
미세한 적갈색의 부분은 하피첩을 만든 치마의 염색 흔적으로 추정되며 바느질을 한 흔적도 발견된다. 이 첩은 제작한 뒤 한 번도 개장(改裝, 포장이나 장식 따위를 다시 꾸밈)하지 않아 1810년 제작 당시의 제본 양식과 종이, 서화의 표지 장식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세 첩 중 한 첩의 표지는 푸른색 종이를 박쥐와 구름 모양으로 장식했고 나머지 두 첩은 미색 종이로 만들었다. 첩의 크기와 표지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세 첩 모두 표지 안쪽에 붉은색 면지를 사용해 동일 시점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첩 안에 필사 종이도 같은 박쥐 모양이 그려져 있어 필사 시기와 첩으로 만든 시기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표지의 글자가 상당수 사라져 추후 적외선 촬영을 통해 남아있는 획의 형태 등을 연구하고 첩이 제작된 정확한 순서를 밝힐 계획이다.
2010년 하피첩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보물 제1683-1호)과 비교해도 하피첩의 가치는 뒤지지 않는다. 다산초당 전후좌우에 있는 네 가지 경물에 대해 기록한 사경첩에 비해 하피첩은 글자를 한자씩 정성껏 쓴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다.
현재 하피첩은 곰팡이와 물 얼룩, 접착 부분의 들뜸 등 손상된 부분이 있어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하피첩을 살충 처리한 뒤 직물의 염료를 규명하고 유물에 무리가 없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보존처리를 할 계획이다.
접착제는 전통 방식을 활용해 밀가루에서 단백질을 제거한 소맥 전분풀을 사용하고 보존처리가 완료되면 전통 옻칠 방식으로 제작된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하피첩을 소장하게 된 것은 이 안에 담긴 내용 때문이다. 박물관이 추구하는 생활문화를 가로지르는 선비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고 판단했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또 "하피첩의 전문은 이른 시일 내에 한글로 정리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며 "국민 모두의 유물로 생각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하피첩을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