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교체 놓고 카드업계 내홍 … 1000억 출연하고도 밴수수료 인하 난항

2015-09-08 14:28
카드수수료 인하 불발 위기에 소비자 비용전가 여전

카드업계가 카드수수료 인하를 위해 IC단말기 보금에 나서고 있지만, 밴업계의 마찰로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사진=아주경제DB]

아주경제 전운·송종호 기자 = 수수료 인하를 위해 카드사들이 1000억원을 출연한 IC단말기 보급사업이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IC단말기를 보급해 밴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낮추려했지만, 수익 악화를 우려하는 밴업계와 마찰을 빚으면서 IC단말기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8개 카드사가 출연한 1000억원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결국 수수료 인하가 불투명해져 소비자들에게 비용 전가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신용카드 복제를 막기 위해 보급키로 한 IC단말기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정보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8개 카드사 1000억 출연해 밴수수료 인하 시도
8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사들이 1000억원이나 되는 기금을 출연해 65만개 영세가맹점(연매출 2억원 이하)에 IC단말기를 무상 교체해주고 있다. 기금은 주요 신용카드 8개사(신한·삼성·국민·롯데·우리·BC·현대·하나)가 출연했다.

1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출연하며 IC단말기 보급에 나선 이유는 카드 복제 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이 일어나자, 신용카드업계는 마그네틱 단말기보다 상대적으로 정보보호에 뛰어난 IC단말기 카드 보급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정보보호 이외에도 ‘밴피’(밴수수료)를 낮춰 카드수수료를 인하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수수료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카드업계로서는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수료 인하를 위해서는 밴피를 꼭 낮춰야만 하는 상황이다.

밴피는 카드단말기를 보급·관리하고 있는 신용카드 밴사에 지불되는 수수료를 말한다. 금액에 상관없이 신용카드 결제 1건당 100~120원 가량을 카드사가 밴사에 지급한다.

하지만 건당 100~120원이나 되는 높은 수수료 때문에 카드사들의 출혈이 만만치 않아, 그동안 밴피는 카드수수료 인하에 걸림돌이 자리잡아왔다.

결국 카드사들은 이번 IC단말기 교체 사업을 통해 밴피를 대대적으로 낮춰, 카드수수료 인하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IC단말기 교체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여신금융협회는 최근 3개 사업자를 선정했다. 한국스마트카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 금융결제원은 밴피를 50~70원 가량만 받는다는 조건으로 선정됐고, 이를 통해 신용카드사들은 결제 1건당 50원 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 사업자를 통해 IC단말기가 보급되면 카드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밴업계 거센 반발 … 출연 기금 1000억원 '무용지물'
1000억원이라는 거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IC단말기 보급사업은 시작부터 삐그덕 대고 있다. 밴사와의 마찰 때문이다.

선정된 3개 사업자와 함께 IC단말기를 보급해야 하는 여신금융협회로서는 기존 신용카드단말기 보급현황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만 사업이 가능하다.  IC단말기가 보급되지 않은 가맹점을 파악해야 하고, 또 기존 밴사와의 계약 기간 등에 대해서도 일일히 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65만개로 추산되는 영세가맹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여신금융협회로서는 기존 단말기를 보급·관리하고 있는 밴사들의 도움을 절실한 실정이다.

하지만 밴업계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신규사업자들이 밴피를 50원이나 내리면 밴업계로서는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대당 15만원 정도 되는 IC단말기는 카드업계의 기금 1000억원으로 66만대 가량 구입이 가능하다. 1000억원을 모두 단말기 구입에 사용한다면, 사실상 65만 영세가맹점 전체에 보급이 가능하게 된다. 

전국 240만개 신용카드 가맹점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영세가맹점의 단말기 보급·관리를 신규 사업자가 하게 되면 밴업계로서는 실적 저하가 크게 우려될 수밖에 없다. 기존 밴사들이 IC단말기를 보급한 가맹점은 제외되지만, 사실상 아직까지는 마그네틱 단말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밴업계로서는 좌불안석이다.

때문에 현재 밴업계는 여신금융협회가 요청하는 단말기 보급 현황 데이터를 건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수수료 인하를 위해 거금을 출연한 카드업계의 바램과는 달리, IC단말기 보급 사업이 시작부터 진통을 겪으면서 카드수수료 인하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신규사업자인 금융결제원은 자체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 보급에 나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 카드업계의 수수료 인하 움직임은 더욱 더뎌지고 있다.

이미 밴사업을 하고 있던 금융결제원은 100여개의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대리점은 밴피의 약 75~80% 가량을 수입으로 벌어들이는데, 금융결제원이 밴피를 인하하면 대리점으로서는 수입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리점주들이 단말기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외에 한국스마트카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는 아직 단말기를 개발하지도 못해, 보급 사업에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사들의 출연 기금 1000억원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였다"며 "결국 수수료 인하가 불투명해지면서 가맹점이나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확대하기 쉽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