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려’가 실종된 2015년 한국
2015-07-26 10:07
김경수 문화레저부장·골프전문기자
“남 아랑곳하지 않는 행동 많아
나 못지않게 동반자 생각하는
골프의 에티켓·매너 본받을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가 끝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골프담당 기자들은 신경이 곤두 선다. 미국LPGA투어를 휩쓸다시피하고 있는 한국선수들 가운데 또 누가 우승하는가를 주목하고, 우승하면 기사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들어서는 거의 매주 월요일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열린 18개 미LPGA투어 대회 가운데 11개를 한국선수들이 석권했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와 호주교포 이민지까지 합하면 올시즌 미LPGA투어에서 나온 우승컵의 77.8%(14개 대회)를 한국(계) 선수들이 안았다.
골프가 한국에서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 됐다. 우리 선수들이 미국이나 일본 프로골프투어에서 잘 해서 그런 것도 있겠으나 골프만이 지닌, 독특한 마력 덕분이 아닌가 한다.
골프는 당구·볼링·테니스 등과 달리, 골퍼 뜻대로 되지 않는 스포츠다. 연습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연습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정복’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골프는 그만큼 기량 외의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골프는 그처럼 어려운 스포츠이면서도 ‘신사의 스포츠’ ‘에티켓을 중시하는 스포츠’로 통한다. 골프에서는 타수를 계산하거나, 벌타를 매기는 일 등을 골퍼 스스로 해야 한다. 골퍼라면 누구나 한 타라도 줄이고 싶은 욕망이 있으나, 규칙과 에티켓·매너를 어겨가면서까지 스코어를 낮춰 적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러면 금세 동반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
골프는 골퍼 스스로 양심에 따라 플레이하는 스포츠임과 동시에 동반자들을 철저히 배려해야 하는 스포츠다. 골프는 3∼4명이 함께 플레이하므로 혼자만 생각할 수 없다. 본인 외에 동반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동반자가 스윙할 때에는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동반자의 시야에 걸리는 지점에 서있어서도 안된다. 동반자가 잘 치면 ‘굿 샷’을 외치고, 실수하거나 ‘하이 스코어’를 내면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예의다. 벙커샷을 한 후에는 다음에 오는 골퍼들을 위해 반드시 모래 정리를 하고 떠나야 한다. 동반자의 볼이 숲속에 떨어지면 함께 가서 찾아주는 것도 골프에서만 볼 수 있는 스포츠맨십이다.
그래서 골프를 제대로 배운 골퍼들에게는 ‘배려’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그들에겐 동반플레이어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에 배어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진정한 골퍼들에게 생활화돼있다시피한다.
우리 사회는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듯하다. 길을 걸으면서도 앞에서 오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에 몰두한다. 대중교통수단 안에서도 옆사람을 상관치 않고 큰 소리로 오랫동안 통화한다. 차로(車路)에 잘 못 끼어들면 쫓아오거나 앞에서 급정차해 놀라게 한다. 아파트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소음을 좀 냈다고 하여 찾아가 칼부림을 한다. 남의 작품을 베끼고도 진정성있는 사과는 안한다. 여(與)와 야(野)는 이슈만 터지면 평행선을 달린다.
이 모두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 외의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 교육이 잘못된 탓인지,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여유 부족 탓인지,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탓인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배려가 없으면 베레부린다(그르친다)’는 사투리 우스갯소리가 있다. 배려없는 사회는 한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처럼 불안하다. 골퍼들 수준의 배려만이라도 있다면, 우리 삶의 질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