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패션 명가'…박성철 신원 회장 구속

2015-07-14 16:44

[사진제공=신원]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패션기업 신원그룹에 빨간 불이 켜졌다. 검찰이 창업자인 박성철 회장에 대한 개인비리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박성철 회장은 지난 1973년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을 창업한 이후 40년 넘게 경영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검찰이 박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한 만큼 '패션 명가'의 브랜드 신뢰도뿐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신원(信元)'이라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회사는 박 회장의 평소 철학이 묻어있다. 박성철 회장은 매년 100명 이상 전도에 나서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에 참가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지는 등 그룹은 그동안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왔다.

신원은 베스띠벨리, 비키, 씨 등 여성복 브랜드로 유명하다. 박성철 회장이 1973년 신원통상을 창립해 스웨터 생산·수출을 시작한 뒤 1980년대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박 회장이 신원의 이름을 알린 것은 수입 여성복 브랜드가 아직 국내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않았던 1990년대였다.

당시 신원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여성복 업계의 선두주자로 불렸다.

인도네시아와 과테말라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IMF 외환위기로 국내 경제가 휘청거릴 때에도 재계순위 31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우량 100대 중소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국내외 20여개가 넘는 계열사에서 거둬들인 신원의 총 매출만 2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빠른 성장 과정에서 내실을 다지지 못한 신원그룹은 1년 뒤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신원은 골프장과 전기회사 등을 매각, 13개에 달하던 브랜드는 5개로 쪼그라들었다.

5년 뒤인 2003년 신원은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며 다시 한 번 재기에 들어갔다. 2009년 해외브랜드 사업을 위해 신원글로벌을 설립하고, 2011년에는 여성복 브랜드 이사베이를 새로 론칭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신원의 우수한 제품력과 디자인으로 중국 남성복 시장을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신원의 악재는 그치지 않았다. 박 회장 일가의 탈세 혐의가 포착되면서 1990년대보다 더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신원의 워크아웃 기간 중인 2001년 박 회장의 부인은 광고대행사 티앤앰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증여세와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포탈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앤앰케뮤니케이션즈는 '광고 영화 및 비디오물 제작업체'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신원이 워크아웃 중이던 2001년 설립돼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특별한 영업 활동이나 실적이 없이 2003년부터 워크아웃 졸업을 앞둔 신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사실상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현재 박 회장은 신원의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대신 부인 송모씨가 대주주로 있는 티앤앰커뮤니케이션즈가 28.38%의 신원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박 회장의 세 아들도 사내이사 등으로 재직하며 1%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박 회장의 수사에서 박성철 회장이 허위로 개인회생을 받은 혐의도 포착했다. 지난 2008~2011년 중 가족 명의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숨겨놓은 가운데 법원에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을 신청해 270억원에 달하는 개인채무를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세청은 회사 지분을 편법 소유할 수 있도록 명의를 빌려준 혐의를 받고 있는 송씨와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190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1일 신원그룹을 압수 수색했고, 8일 박 회장을 불러 11시간 가까이 조사했다. 박 회장은 대부분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13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하고, '자숙의 의미로 소명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박 회장을 상대로 사기 회생 혐의와 세금 탈루 과정을 추가 조사하고, 100억원대 회사 돈 횡령 혐의에 대한 조사도 벌일 계획이다. 박 회장이 세금 30억원을 탈루하고 회삿돈 100억원 안팎을 횡령하는 과정을 비호해준 인사가 있는지도 수사할 계획이다.

당분간은 박성철 회장의 아들인 신원의 박정빈 부회장과 박정주 사장 등이 회사 경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정빈 부회장은 사업총괄을, 박정주 사장은 수출업무를 담당해왔다.

신원 관계자는 "현재 박성철 회장이 검찰 조사를 성실히 임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 사업 등 사업 전반에 대해 차질 없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