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포세이돈과 조르바
2015-07-08 15:49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요즘 그리스가 뜨겁다. 하지만, 재정위기에 빠지기 전의 그리스는 우리에게 부러운 나라였다. 신화의 나라, 코발트 블루의 지중해 위에 떠 있는 크레타 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등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는 꼭 가봐야 할 나라로 남아 있었다.
2010년 이후 그리스는 문제아가 되었다. 그리스 사태의 파장이 유럽을 넘어 한국의 금융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돈을 빌려간 채무자로서, 시쳇말로 을 중의 을인 그리스가 거꾸로 독일과 프랑스, 유럽중앙은행 등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돈 못 갚겠다, 빚을 깎아 달라”면서 을이 갑에게 대들고 있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비극적인 그리스 신화는 ‘아리아드네’와 ‘아이올로스’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 에 나오는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월가의 투자은행이 그리스에 판매한 파생상품들의 이야기다. 2001년 유로존 가입을 목전에 둔 그리스는 2개의 파생상품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는 분식을 감행한다. 미국 월가에 있는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의 최첨단 금융기법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2000년에 그리스 정부는 미래의 복권수입을 담보로 ‘아리아드네’라는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고, 마찬가지로 2001년에는 미래에 들어올 공항이용료를 담보로 ‘아이올로스’라는 상품을 팔았다. 그 대가로 그리스는 재정수입이 늘어난 것처럼 분식(粉飾)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급해야 할 수수료와 이자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1년에 ‘아이올로스’를 통해 조달한 28억 유로의 자금은 5년이 지난 2005년에 51억 유로가 되었다. 이처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숨겨서 유로존 가입의 자격조건을 맞춘 그리스 정부의 허영심과 월가 금융자본의 야성적 충동이 어우러져 또 하나의 일그러진 그리스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 번째는 조세 시스템의 문제다. 2010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탈세액은 20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리스 부유층이 세금을 피해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린 돈이 800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스의 자영업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31.9%에 달하는 것도 지하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세금을 걷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2.4%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다면, 꽉 막혀있는 그리스 정부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흔히 그리스가 복지에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여 재정적자가 커졌다고 지적하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 않는다. 2014년 기준 그리스 복지지출의 GDP비중은 24.0%로서 OECD 선진국 평균 21.6%보다는 높지만, 독일(25.8%), 덴마크(30.1%), 핀란드(31.0%), 프랑스(31.9%)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결국, 그리스가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망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비극으로 흘러가고 있는 그리스 신화를 ‘해피 엔딩’으로 반전시킬 묘안은 없을까? 나라살림을 튼튼하게 만드는 비결은 쉽지도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그리스 특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다시 그리스를 찾아오게 하고, 세원을 공평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며, 비대한 지하경제를 대거 축소시키면 된다. 포퓰리즘을 멀리하고 복지지출은 중복되거나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가 다시 활기찬 포세이돈과 조르바의 나라로 재탄생하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