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으로] 물길따라 흘러 흘러, 장강 유랑기

2015-06-25 14:54
중국의 세월, 기억 및 변화가 녹아있는 젖줄, 장강....천하절경도 '눈길'

장강 토가족(土家族) 마을 '장강인가(長江人家)'는 무릉도원 같은 아름다움으로 관광객을 매혹한다. [사진=김근정 기자]


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
바람은 세차고 하늘은 높은데 슬피 우는 원숭이. 깨끗한 섬, 하얀 모래 위를 빙그르르 나는 새. 

無邊落木蕭蕭下(무변락목소소하)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낙엽은 하염없이 우수수 떨어지고, 끝없는 장강에 강물이 넘실대는구나. 

'시성(時聖)'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등고(登高)’의 일부다. 아름답지만 적막한 가을 속 긴 물길에, 외로운 나그네의 탄식을 담았다. 중국 문인들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사랑했던 곳, 수 천년 역사와 핏빛 전쟁의 상처, 서민들의 애환까지 보듬어 흐르는 중국의 젖줄. 이곳이 장강(長江)이다.

장강 물길을 따라 5성급 호텔, 크루즈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동양의 산수화에 파묻혀보는 건 어떨까. 일반적으로 충칭(重慶)에서 시작해 이창(宜昌)까지 640km의 여정이지만 좀 더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면 육로로 주변 도시를 둘러보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도 괜찮다. 

장강을 역류하는 여행을 선택한다면, 그 시작점으로 충칭·난창(南昌)과 중국 3대 '화로'(여름에 덥다는 뜻)로 불리는 ‘핫’한 도시, 우한(武漢)을 추천한다.
 

[그래픽=아주경제 임이슬 기자]


▲ 과거와 현재 공존, '물의 도시' 우한
 

우한 황학루 내부에는 황학루 이름에 얽힌 전설을 그린 벽화가 있다[사진=김근정 기자]


우한 톈허(天河) 공항에 내려서면 눅눅한 공기에 숨이 턱 막힌다. 한국과 비슷한 기온이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습기가 들러붙은 탓이다. 우한은 장강은 물론 지류인 한강(漢江)이 교차하고 호수만 166개에 달하는 ‘물의 도시’다.

유비, 관우, 장비가 이끌었던 촉(蜀)나라 문화의 발원지이자 중국 ‘중부굴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실크로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화중(華中)의 중심지기도 하다.

과거가 녹아있는 우한의 명소로는 황학루(黄鹤楼)가 있다.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등 수많은 시인들에게 시상을 안겨준 곳이자 국가 5A급 명승지다. 현지 가이드는 “과거 술을 좋아하는 한 선인이 신씨(辛氏)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학을 그렸더니 장사가 번창했다. 10년 뒤 선인이 와 황학을 타고 날아가자 신씨가 이를 기리려 누각을 짓고 황학루라 했다”고 소개했다.
 

1956년 등장한 장강1교는 우한 최초 장강대교다. [사진=김근정 기자]


현재 황학루는 보수 중으로 완전한 자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누각에 올라 매끄럽게 휘어진 지붕 끝자락에 펼쳐진 우한시 전경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우한의 변화를 함께한 우한 최초 장강대교, 장강1교도 보인다. 황학루 인근에 위치한 장강1교는 1956년에 탄생했다. 위로는 자동차, 아래로는 기차가 오가는 이층 구조가 독특하다. 
 

중국의 '찰리우드'를 꿈꾸는 완다그룹이 세운 우한 무비테마파크 입구.[사진=김근정 기자]



우한의 변화는 완다(萬達)그룹이 함께하고 있다. 첨단의 색채가 풍기는 완다무비테마파크가 우한에 있다. 이곳에서는 거대 스크린 및 각종 효과로 생동감넘치는 재난현장 및 오지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하늘을 나는 의자를 타고 후베이성을 엿보는 ‘페이웨후베이(飛躍湖北)’는 두근거린다. 부드러운 바람과 구름을 가르며 장강 천하절경, 유채꽃 노란빛이 찬란한 우한, 치열했던 적벽대전까지 순식간에 펼쳐진다. 스크린 영상은 모두 실사로 적벽대전 함선 모형도 재현했다. 제작기간만 2년이다.

▲ 관우의 도시, 징저우
 

관우가 목숨걸고 지키려했던 징저우 고성의 모습. [사진=김근정 기자]


우한에서 3시간 남짓 버스로 달리면 삼국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중원 진출의 요충지 징저우(荊州·형주)에 도착한다. 현재 징저우는 인구 300만명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과거에는 곡창지대이자 중원 진출의 관문,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각국이 노렸던 치열한 전쟁터다. 관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징저우 시내에 위치한 징저우 고성에서 관우를 만난다. 9m 높이의 성벽을 오르면 누각, 빈양루(賓陽樓)가 맞이한다. 빈양루 1층에는 유비와 제갈량, 관우, 장비, 조운의 촉나라 영웅 다섯명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 있다. 성곽전체 길이는 11km로 도보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 '자연이 창조한 예술', 장강삼협

▷ 토가족 마을
 

장강 이창 근처 토가족 마을 '장강인가'의 입구.[사진=김근정 기자]


징저우에서 크루즈에 탑승한다. 징저우에서 펑두(豊都)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원래는 충칭까지 이어지지만 지금은 물이 없어 펑두에서 끝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창 인근에 도착하면 150명 정도 규모의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5분간 이동한다. 이곳에 국가급 5A 풍경구이자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 마을, 장강인가(長江人家)가 있다. 깎아지른 수상 절벽, 그 사이를 파고든 푸르른 녹음, 전통 색채가 묻어나는 수향가옥, 첫 인상부터 호감이다.

빨간 전통옷을 입은 마을 처녀, 그녀와 사랑을 이루지 못해 구슬픈 멜로디를 흘리는 남자.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옆으로 살짝 고개만 돌리면 옥빛 물길이 눈부시다. 대나무 숲을 헤쳐 걸어가다보면 암벽과 함께 원숭이들이 등장한다. 돌아서는 데 꿈을 꾼 듯한 여운이 아쉽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 삼협댐과 삼협절경
 

중국의 자랑, 세계 최대규모의 삼협댐.[사진= 김근정 기자]


장강은 7000만년 전 지각활동으로 형성된 습곡지형이 융기해 형성된 거대한 산줄기를 관통하고 있다. 산줄기 중 석회암 지형이 물에 침식돼 이룬 협곡, 이 구간이 이창에서 충칭까지 이어지는 소위 장강삼협 구간이다. 삼협은 이 구간에 위치한 시링샤(西陵峽), 우샤(武俠), 취탕샤(瞿塘峽)를 지칭한다

토가족 마을을 떠나 크루즈를 타고 시링샤를 지나가면 삼협댐이 등장한다. 삼협댐(싼샤댐)은 높이 185m, 길이 2309m의 세계 최대규모로 국가급 5A 관광지로 지정돼있다.

2006년 삼협댐이 건설되고 10~20m의 장강 수위가 150m까지 높아져 비로소 크루즈를 장강에 띄울 수 있었다. 이창에 정박해 버스로 10분 이동하면 언덕 위 삼협댐 전망대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삼협댐의 웅장한 자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장강 삼협 중 하나인 우샤 신녀봉에 오르는 길. [사진=김근정 기자]

장강 우샤 인근의 소삼협. [사진=김근정 기자]


삼협댐을 떠나 물길을 달리다보면 거대한 바위산이 켜켜히 협곡을 둘러싼 형국의 우샤를 만난다. 우샤는 우산(巫山) 12개 봉우리, 특히 서왕모(西王母)의 딸 신녀 요희(瑤姬)가 변해 생겨났다는 신녀봉(神女峰)으로 유명하다.

우샤관광의 또 다른 묘미는 소(小)삼협(샤오싼샤)에 있다. 크루즈에서 내려 100~150명 규모의 유람선을 타고 1시간 가량 소삼협을 즐긴다. 상대적으로 좁은 물길을 따라 섬세한 비경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명소다.

마지막은 장강삼협의 백미, 취탕샤다. 삼협 중 가장 짧지만(8km) 세찬 기운의 강물과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절벽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 펑두와 석보채
 

장강의 진주, 중현에 위치한 신비한 목탑 석보채.[사진=김근정 기자]


장강유랑의 최종 정박지는 펑두(豊都)현이다. 펑두는 사람이 죽으면 옥황상제에게 최후의 심판을 받는 곳, ‘귀신도시(鬼城)’로 알려져있다. 이곳에서 장강 여행이 끝난다니 느낌이 묘하다.

인근 중(忠)현에는 장강의 진주, 석보채(石寶寨·스바오자이)가 있다. 출렁대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언덕이 잠겨 생긴 작은 섬으로 간다. 이곳에서 절벽에 달라붙은 듯 서있는 12층 목탑(청나라)을 볼 수 있다. 높이 55m의 목탑이 못 하나 쓰지않고 절벽에 세워졌다하니 안개낀 날씨까지 더해져 더욱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