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으로] '구이린(계림)'의 3族3色...천하제일의 미를 완성하다
2015-06-10 19:57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푸른빛 비단 끈을 연상케 하는 리장(漓江)과 병풍처럼 이어지는 푸른 옥비녀 같은 산봉우리들. 해질 무렵 석양을 등에 지고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 한 폭의 화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 같은 풍경에 마음이 고정되고 생각이 멈추는 곳.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천하제일의 절경)로 표현되는 중국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구이린(桂林)의 간략한 소개사다.
구이린은 천하제일의 산수로 그려진 동양화로 표현된다. 푸른 산(山靑)과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水秀), 곳곳에 들어선 기이한 동굴(洞奇)과 아름다운 바위(石美)의 4대 절경이 기본 구도를 이룬다. 여기에 좡(壯)족, 먀오(苗)족, 야오(瑤)족, 퉁(侗)족, 후이(回)족 등 28개 소수민족 문화가 다양한 색채를 입혀 구이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그 지역의 사람을 만든다는 뜻의 일방수토양일방인(一方水土養一方人)이란 말이 구이린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 구이린의 천혜 산수 자원은 소수민족들만의 진귀한 고유문화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곳에 뿌리내린 소수민족 문화의 공존. 이것이 구이린의 진정한 모습이다.
구이린의 소수민족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있다.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76%를 차지하는 룽성(龍勝)소수민족자치현이다.
구이린에서 차를 타고 산악지대로 2시간 30분 정도 들어가면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마을과 그들이 일궈놓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계단식 밭인 룽지티톈(龍脊梯田)을 볼 수 있다. 룽지티톈은 좡족 중심의 핑안티톈(平安梯田)과 야오족 중심의 진컹티톈(金坑梯田)으로 구분된다.
룽지티톈을 찾게 되면 가장 먼저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란다. 이어 척박했던 산악지형을 이처럼 아름다운 결과물로 변화시킨 소수민족의 지혜에 감탄사가 터진다.
중국 남부지방에서 계단식 밭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66㎢ 면적의 광활한 산채를 굽이굽이 돌아 조성된 계단식 밭과 사이사이에 들어선 난간식 목조 건물들의 조화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광은 이곳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곳의 대표적 소수민족인 좡족과 야오족은 송(宋)대 말 전쟁을 피해 산둥(山東)성에서 이곳으로 넘어와 정착했다. 이들은 700년 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자연 속에서 밭을 경작하며 자력갱생해 왔고, 현재의 룽지티톈을 탄생시켰다.
이곳은 신중국 건국 이후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의 요새같은 곳으로, 이곳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15년도 되지 않는다. 진컹티톈은 1989년 룽성(龍勝)현의 원핑(文平)이라는 이름의 한 사진사에 의해 발견됐고, 이후 2003년 외부에 공개됐다. 핑안티톈은 80년대 초 수많은 사진사에 의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이후 이 지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고, 1999년 중국 국가여유국이 관광명소로 공식 지정했다.
최근 이곳에는 현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과거 바구니를 이고 걸어서 산을 오르내렸던 좡족 주민들에게 케이블카는 주요 이동 수단이 됐다. 관광객이 늘면서 곳곳에 민박집, 식당 등이 들어서고 있다. 과거 생존의 터전을 마련해준 자연 환경은 현재 이들 민족에게 연간 1인당 50만원의 관광수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미래 경제의 원천이 되고 있다.
◆ 세계유일 전통...'장발촌' 훙야오족
야오족 중에서도 붉은색 옷을 주로 입어 명명된 훙야오족(紅瑤)은 보수적 성향을 지닌 민족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거주하는 황뤄야오자이(黃洛瑤寨)는 중국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등장하는 상상 속 마을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세계 유일의 장발촌이라는 명성 때문이다.
훙야오족 여인들은 긴 머리카락을 부(富)와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열 여덟 살 성인식을 올릴 때를 제외하고 평생 머리카락을 단 한 번도 자르지 않는다. 평균 머리카락 길이는 1.7m며 최장 길이는 2.14m에 달한다.
쌀뜨물 천연 샴푸로 사용해온 덕분에 훙야오족 여인들은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흰 머리카락 한 올 없는 건강한 머릿결을 자랑한다. 긴 머리카락은 이들이 오랜 기간 계승해온 고집스런 전통을 상징한다.
이들은 사상이 보수적인 탓에 오랜 기간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왔고, 이 때문에 본래 매우 빈곤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훙야오족 여인들은 화려한 장신구가 아닌 머리와 의복 도안 자수 등에 더욱 치중하게 됐고 이는 수공예 자수와 공예품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훙야오족이 선보이는 공연에는 장발전통, 결혼문화, 모계사회 풍습 등 그들이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의 문화는 이 지역 출신의 한 여대생이 시작한 장발 공연을 계기로 외부에 알려졌고, 현재 이 마을에 최대 수익을 안겨주는 ‘장발 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 교류와 단결이 힘...'바이자옌' 퉁족
한족(漢族)은 내장, 먀오족은 뼈, 퉁족은 살과 같다는 표현이 있다. 퉁족들이 자신들의 유연한 성격과 예술적 감각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표현이긴 하나 그들의 문화를 접해보면 금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룽성현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면 류저우(柳州)시 산장(三江)현 소재의 산장퉁족자치현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풍경구인 청양펑위차오(程陽風雨橋)에는 퉁족의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이 곳곳에 배어있다.
융지차오(永濟橋), 판룽차오(盤龍橋)로도 불리는 이 다리는 퉁족의 뛰어난 건축양식을 집대성한 건축물로 꼽힌다. 이 다리는 쇠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크고 작은 나무 막대기를 이어서 완성한 것으로 서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맞춰져 있다.
청양펑위차오는 다리, 정자, 회랑을 일체화시켜 용이 마을을 휘감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용의 승천이 매년 농사에 적합한 양의 비와 바람을 내려줘 마을에 매년 풍년과 평안이 오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마을과 마을 간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이를 통해 사람간의 교류를 지속시킨다는 깊은 뜻도 내포돼 있다. 퉁족의 단결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결과 교류를 중시하는 퉁족의 성향은 그들의 음식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퉁족의 음식문화는 퉁부리솬(侗不離酸·신음식을 빼고 퉁족을 논할 수 없다)과 바이자옌(百家宴·백가연) 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된다.
바이자옌은 쉽게 말해 퉁족이 손님 접대를 위해 차리는 대규모 잔칫상이다. 허룽판(合攏飯·한데 어울려 먹는 식사), 창줘옌(長桌宴·긴식탁 연회)으로도 불린다. 퉁족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손수 만든 가정식을 십 여 가지 내와 한 상 차린 뒤 어렵게 방문한 손님을 귀하게 대접한다.
퉁족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방문하면 마을 어귀에서 전통 노래로 환영의 인사를 전한다. 손님들 또한 자신들의 노래로 화답한다.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키듯 손님들과 함께 어울리는 춤사위도 펼쳐낸다. 건축양식에서부터 음식, 예술까지 단결과 교류를 중시하는 퉁족의 문화와 사상이 짙게 묻어난다.
◆ '숨겨진 보석' 구이린의 변신
최근 구이린이 새 옷을 갈아입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간 구이린의 자연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각종 규제의 잣대를 들이댔고, 지역 발전에 많은 재원을 투자하지도 않았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자연 환경 만큼이나 경제발전 속도도 더딘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구이린으로 현대화 및 개방개혁의 물결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구이린 리장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고층빌딩이 곳곳에 들어서고, 중국 곳곳을 잇는 고속철 공사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도시화 개발계획에 따라 구이린 도심 곳곳에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오랜 기간 보존과 개발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있던 구이린은 천혜의 관광자원과 소수민족 문화를 전세계로 개방해 지역경제 발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본격 작업에 나섰다.
최근 시정부는 구이린을 글로벌 관광허브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아세안 국가와의 관광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박람회도 최초로 추진했다. 특히 구이린은 중국 정부의 올해 최대 국책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선도할 핵심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개혁개방의 변화를 시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