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놓친 가뭄대책 또 예고된 '官災'

2015-06-18 07:53
물가관리·농가지원 등 625억원 투입…매년 가뭄에도 대비책 '전무'
부처별 업무 분산 효율지원 난항…피해정량화·대응시스템 마련해야

극심한 가뭄으로 채소값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배추가 쌓여있다.[남궁진웅 timeid@]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올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가뭄은 이미 예고된 ‘인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0년 이후 매년 크고 작은 가뭄이 발생했지만 적기에 온 장마 등으로 해갈이 되면서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가뭄은 다르다. 지난해 저수지를 채우지 못하면서 발생한 것이 1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뭄에 대비한 충분한 수량을 확보했다면 올해와 같은 극심한 가뭄에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한달새 채솟값 껑충…물차 지원으로 해결될까

정부 당국이 메르스로 눈을 돌린 사이 가뭄은 조용히 농가를 덮쳤다. 특히 배추는 산지 출하가 지연되면서 평년보다 출하량이 16~34%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농업관측센터는 앞으로 가뭄과 고온현상이 이어질 경우 고랭지 배추 7~9월 출하량은 평년보다 약 3만톤(9∼22%)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무의 평균 도매가격은 18㎏에 1만3375원으로 노지 봄 무 출하량이 줄면서 작년(9036원), 평년(1만1618원)보다 가격이 올랐다.

다른 채솟값도 동반 상승하며 ‘밥상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 가격으로 이달 1∼10일 햇마늘 1망(3㎏/상품) 가격은 1만13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526원보다 73% 올랐다.

같은 기간 양파 역시 1망(1㎏/상품) 기준 817원으로 전년 동기 430원보다 90% 상승했다. 대파는 ㎏ 당 평균 도매가격이 1∼12일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978원)이나 평년(1031원)보다 2배 넘게 뛴 2364원에 팔리고 있다.

◆정부, 물가잡기 총력…피해지역 625억원 투입

이처럼 소비자와 직결되는 밥상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정부는 가뭄 장기화에 대비한 지원책으로 625억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모내기와 밭작물 파종이 지연된 지역과 논·밭 용수가 부족한 지역에 국비 61억원(지방비 포함 312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을 밝혔다.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16개 저수지 준설에는 30억원이 지원된다.

이번 대책에는 농작물 고사 등 피해를 본 농가에 피해복구비를 지원하고 파종·정식 한계기(6월 말∼7월 초)를 넘긴 벼·옥수수·콩 등 밭작물의 경우 가뭄에 비교적 강한 조·메밀·수수·기장 등으로 대체 파종을 추진한다.

생육이 부진한 배추·무 등 고랭지 채소 수급 안정 대책으로는 7∼8월 수급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정식이 지연된 면적의 정식을 이달 말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급·관수 시설 지원과 병충해 방제 등 기술 지원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로 예정된 배추 계약재배 정식면적 중 38㏊를 이달 말까지 조기 정식해 8월 말 공급물량 2500톤을 미리 확보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동필 장관은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뭄·수급대책 상황실을 운영하겠다”며 “지자체·관계부처 등과 긴밀히 협조해 가용 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지원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처별로 쪼개진 가뭄대책 “사공이 많다”

정부가 625억원의 지원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시큰둥하다. 대책을 내놓더라도 부처별로 쪼개진 가뭄관련 업무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뭄 업무는 기상청,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등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다.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한 재난 컨트롤 타워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가뭄 대응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형수 인하대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는 “산농어촌 지역은 가뭄 피해를 크게 느낀다. 가뭄 피해는 서서히 오지만 굉장히 크고 잘 보이지 않는데 그런 피해를 정량화해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와있는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위주 물 공급 정책으로 정작 가장 큰 가뭄 피해를 당하는 농산어촌 주민이 소외되는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농산어촌의 가뭄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원 국토연구원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상류 쪽에 대형댐을 건설해 하류 지역에 원만하게 물을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었다”며 “그 결과 원류 주변에는 가뭄이 올 수밖에 없다. 댐 주변 지자체들도 물을 끌어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