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 ‘미얀마 가스전 매각 항명’ 전병일 대우인터 사장 해임

2015-06-10 15:33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장[사진=대우인터내셔널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김지나 기자 =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한 가족으로 물리적·화학적 결합을 자신했던 포스코가 포용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숙원 사업이나 다름없었던 미얀마 가스전 매각과 관련해 충돌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채 ‘항명죄’를 씌워 전병일 대표이사 사장 해임을 결정했다. 또한 매각 문건 유출의 책임을 물어 조청명 포스코 가치경영실장(부사장)을 회장 보좌역으로 보직이동하는 '경질인사'도 단행했다. 지난달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발족하며 모든 계열사 CEO에게 사표를 받아놨기에, 이 중 전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 사장은 권 포스코 회장이 선임한 인물로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화 하는데 역점을 쏟아줄 것을 주문했던 인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권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공기업과 사기업을 가리지 않고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 회장이 정부와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대우인터내셔널의 자원개발 부문을 털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물론 전직 대우 출신 인사들이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 파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이날 전 사장 해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대우인터내셔널 경영진들도 이날 오전 본사에서 회의를 갖고 회사의 입장을 정리해 권 회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입장문은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포스코의 전 사장 해임건 및 미얀마 가스전으로 대표되는 자원개발부문 매각 추진에 대한 강한 불만의 뜻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포스코로부터 미얀마 가스전 매각 사실이 알려진 직후, 전 사장이 지난달 26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권 회장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전 사장은 글에서 “포스코 구조조정은 미얀마 가스전 같은 우량자산을 매각하는 게 아니라 포스코그룹 내 산재한 부실자산, 불용자산, 비효율자산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권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철강본업의 경쟁력을 늘려야 한다며 비핵심 자산 매각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상 정준양 전 회장이 벌여놓은 것들을 제거하겠다는 뜻인데, 이러다보니 대우인터내셔널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였다. 이유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2010년 당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작업에 참여했던 전직 포스코 인사는 “포스코가 종합상사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 마치 1990년대 제2이동통신사업(구 신세기 이동통신)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B2B사업만 진행했던 포스코가 B2C사업의 복잡함을 이겨내기 어려워 결국 사업을 접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포스코가 담아낼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종합상사는 직원 개개인이 독립된 사업체다.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을 보고 이를 실현해 내는 게 종합상사다. 사업 범위의 한계 또한 없다. 사업성이 엿보이면 무엇이든 참여한다. 연간 생산계획을 정하고 모든 것을 서류화해 원칙과 절차에 맞춰 생산을 하는 포스코로서는 이러한 대우인터내셔널의 기업 문화를 감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회사는 공개하지 않지만 포스코에 인수된 후 해외지사에 근무하던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의 퇴사가 늘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해외지사에 인턴으로 근무한 뒤 귀국한 대학생 김모씨(28)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도대체 일을 못하겠다고, 당장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실제로 그만둔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새주인(포스코)이 온 뒤 채권단 때보다 더 상황이 안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포스코 그룹으로 편입된 후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불만이 커질대로 커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는 미얀마 가스전에 대한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애정을 무시한 채 매각을 공개함으로써 갈등의 골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미얀마 가스전 개발의 역사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이었던 (주)대우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의 의지로 미얀마에 진출해 가스전 개발을 처음 추진했다가 가스 매장량이 적어 포기했다. 대신 미얀마 정부에 원유와 경유를 대량 공급하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신뢰를 쌓았는데 1999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해 자금난에 빠졌을 당시 미얀마 정부는 자국내 부족한 외환사정에도 불구하고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대금은 제 때 결제해주기도 했다. 그룹이 해체돼 대우인터내셔널로 독립한 2000년, 미얀마 정부는 해외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현재의 미얀마 가스전 개발권을 대우인터내셔널에게 맡겼다. 그만큼 대우인터내셔널을 믿었던 것이다.

이에 대우인터내셔널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준비를 착실히 해 2013년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위기 속에서도 회사의 역량을 모두 결집시켜 만들어낸 성과물이자 기업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해외자원개발 성공사례로 꼽히는 미얀마 가스전을 포스코는 그저 1조원이 넘는 금액적인 가치로만 평가하고 이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는 미얀마 가스전이 전 정권에서 생산에 들어간 점을 들어 부실한 해외자원개발 사업과 같이 치부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가스전이 갑자기 터진 것도 아니고 지난 13년 동안 직원들이 합심해서 무역 트레이딩을 하고, 여기서 번 돈을 영업 이익률 1~2%도 안되는 가스전에 투자해 왔다. 전 직원들이 13년간 허리띠 졸라매며 미얀마가스전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다”며 “고생의 성과가 이제부터 나오고 있다. 앞으로 25~30년 동안 매년 3000억원 수익이 기대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매각 얘기가 나오니 전 사장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권 회장은 지난 9일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16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매각건에 대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한 검토였는데 당장 판다는 것처럼 이야기가 나왔다”며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권 회장은 “포스코가 어려워지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포스코를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며 “만약 판다면 경기가 나빠지기 전에 팔아야 하는데 그전에 (매각을 통해)현금 자산 등을 얼마나 챙길 수 있는지 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