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발레 '레이지' 한국서 20년 살면서 느낀 분노 풀어내"

2015-06-05 17:51
서울발레시어터 안무가 제임스 전 예술감독.. LG아트센터서 공연

[서울발레시어터 모던발레 '레이지']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 "한국에서 20년을 살면서 느낀 분노를 춤을 통해 해소해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SBT)가 올해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창작 모던발레 '레이지'(분노)를 무대에 올린다. 5~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친다.

 안무가 제임스 전(56) 예술감독이 3년 전부터 구상해 지난해 처음 공개한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 대한 분노와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질주할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춤으로 풀어낸다.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5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20년을 살다보니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많았고 화가 났다"며 "지난해 세월호 등을 통해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예산 부족으로 생략했던 장면들을 덧붙여 이번에 정식으로 선보이게 됐다.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 존 애덤스의 음악과 차가운 느낌의 무대 연출로 현대인의 고민과 공포에 힘을 실었다. '격렬한 분노'를 뜻하는 제목처럼 20여 무용수들은 세찬 몸짓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무대 위를 질주하며 움직인다.

전 예술감독은 "한국에서 20년을 살다보니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많았고 화가 났다"며 "지난해 세월호 등을 통해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분노가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라​는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분노가 없다면 죽든지, 포기하든지, 무관심하다는 것으로, 분노가 있어야 열정이 생기고, 바꾸려는 노력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하면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인맥도, 학연도 있어야 하죠. 힘센 사람이 이기고 약한 사람이 지는 사회가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좀 더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임스 전 예술감독과 김인희 단장]


미국 줄리아드 대와 모리스 베자르발레단 단원을 거쳐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지낸 전 예술감독은 부인인 김인희(52) 단장과 1995년 SBT를 창단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년간 창작발레 100여 편을 발표하고 2001년 한국 창작발레로는 처음으로 개런티를 받고 작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창작발레 제작과 발레 대중화를 위한 여러 시도를 해왔다.

이제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국내 3대 발레단으로 꼽힐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비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번 작품은 토슈즈를 벗은 무용수들의 '맨발의 질주'로 시작해 공격적이고 변덕스러운 세상에 대한 분노, 자유에 대한 갈망, 허탈한 웃음 속 공허함을 넘어 다시 희망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발레의 기본적인 움직임은 있지만, 내면의 감정을 동작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 분노가 어느 정도 해소됐어요. 이번 공연이 우리의 시대적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교감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이날 김인희 단장은 오는 10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창단 2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서 무용수로서 은퇴를 공식 발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단장은 10년 전인 SBT 10주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정식 발레 무대에 서지 않고 경영에 전념해 왔지만,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하지는 않았었다.

김 단장은 "제가 발레를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이 된다"며 "'빙' 초연 때 제가 주역을 맡았는데 올해 그 무대에서 춤추고 나서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를 지냈다. 관람료는 3만∼7만원.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