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케팅사’도 먹고 삽시다[권혁기의 필담]

2015-06-04 09:36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기본적으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먼저 장르에 맞춰 관객들에게 공감이 될 수 있는 시나리오, 작품성, 재미, 연출, 연기력, 스타 배우의 출연 등이 있겠지만, 제일 기본적인 것은 마케팅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홍보를 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영화의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며, 아무리 나쁜 영화라도 마케팅을 잘하면 의외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만큼 마케팅사, 다른 말로 영화 홍보사의 책임이 막중하다. 영화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직업군이다.

2015년 6월 4일 기준으로 한국영화마케팅협회(KOREAN FILM MARKETERS ASSOCIATION·KFMA·회장 신유경)에 등록된 회원사는 17개사, 약 102명이다. 더홀릭컴퍼니, 딜라이트, 무비앤아이, 메가폰, 시네드에피, 언니네홍보사, 엔드크레딧, 영화인, 영화사 하늘, 올댓시네마, 이가영화사, 이노기획, 워너비펀, 퍼스트룩, 필름마케팅 팝콘, 호호호비치, 흥미진진이 회원이다. 비회원사로 국외자들, 봉봉미엘, 제콘플러스, 프리비젼, 홀리가든 등이 있다.(가나다라 순)

보통 한 영화의 홍보사는 제작사, 투자사, 배급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 큰 외화의 경우에는 외국배우의 내한 행사, 캐릭터 제품 행사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마케팅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국내 작품의 경우에는 감독이 편한 홍보사를 지목하기도 한다.

마케팅사들이 국내영화 기준으로, 편당 받는 ‘홍보마케팅대행비’는 평균 6000만~7000만원이다. 큰 영화의 경우 8000만원을 받기도 하지만 작은 영화의 경우 5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외화의 경우 최소 2500만원을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보수가 더 크다.

홍보마케팅은 영화 크랭크인 전에 캐스팅부터 일이 시작된다. 주연배우들의 캐스팅 건부터 보도자료를 작성해 각 언론사에 전송한다.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촬영 준비단계부터 제작, 후반작업, 제작보고회, 쇼케이스, 언론 및 배급 시사회, 배우들 인터뷰, 지방 무대인사까지 하면 1년은 금세 지나간다. 주연배우가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거나 하면 개봉이 미뤄져 기간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계약상, 홍보마케팅대행비는 절반을 선수금으로 받는다. 한국영화는 개봉 후 4주, 외화는 개봉 후 2주를 계약기간 종료로 본다. 잔금을 받는 기준은 한국영화의 경우 4주, 외화는 2주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게 협회의 가이드라인이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10편의 한국영화를 한다면, 6000만원 곱하기 10을 해 6억원이라는 큰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먼저 인건비로 나가는 돈이 상당하다.

예컨대 홍보사 영화인에 근무하는 직원이 19명이다. 연봉 3000만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1년에 5억 7000만원이 급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인건비로 대부분의 대행비가 소비되는데, 사무실 유지비, 문구비 등 경상비까지 포함하면 적자다. 물가는 오르는데 홍보마케팅대행비는 10년 가까이 답보상태였다는 점에서도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다행히 마케팅협회 출범 이후 지난해 10%의 인상이 결정된 게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었다.

지난해 4월 UPI(유니버셜픽쳐스 인터내셔널)코리아가 외화 ‘어바웃 타임’의 홍보마케팅대행료를 적게 지급해 논란이 됐었다. 최소 2500만원 정도를 받아야 하지만 UPI는 1800만원만 지불했다. 대금을 절반을 먼저 주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후불 지급 관행을 유지해온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막상 돈을 줄 시기가 됐을 때 깎아버리기 때문에 영화마케팅협회가 출범하기 전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는 공문을 보내 정당한 보수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보이콧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UPI코리아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이드라인에 맞춰 일을 진행하고 있다. 홍보사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최근에는 몇몇 중소 투자배급사에서의 잡음이 들리는 상황이다. 선수금 후 잔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적게 주고, 또는 기한을 넘겨 주는가 하면, 수십만원 정도의 소액 대행비를 결제하지 않았다는 하소연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문제가 돼 분쟁이 일어났다가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분쟁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깔끔한 정산이 기본이 돼야 한다. 서로 믿고 일을 시작했고, 서로 공생하는 영화계의 파트너 아닌가.

더불어 '성공 보수'로 영화 성공의 기쁨과 보람을 투자배급사와 홍보마케팅대행사가 함께 나누면 어떨까. 업계에서는 영화 흥행 시, 러닝개런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센티브 개념의 보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그런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를 정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수입에 있어 적자도 그렇지만 인력난도 홍보마케팅대행사를 괴롭히는 일 중 하나다. 적자를 메꾸기 위해 많은 작품과 계약을 맺으면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고, 대리급 또는 과장급 인력이 사직하면 공백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흔치 않아 어려움이 많다.

어찌 보면 마케팅사는 영화계에서 가장 ‘을’의 존재다.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에게 있어서도 을, 언론사에게도 을, 배우들에게도 을,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을’이다. 힘들지만, 영화가 흥행했을 때의 ‘보람’이 원동력이다.

몇 년 전 영화 마케팅사 L사가 문을 닫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R사도 운영을 접었다. M사는 일이 버거워 잠시 쉰다는 전언이다.

‘보람’이 먹여 살려주지는 못한다. 영화 ‘마케팅사’들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영화계의 상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