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 ‘헤비테일’ 계약이 발목 잡나

2015-05-11 17:00

성동조선해양 야드 전경[사진=성동조선해양 제공]


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헤비테일(Heavy-tail) 계약방식이 국내 조선업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조선사들 입장에서는 회사의 존폐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만년 ‘을’ 신세인 조선업계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며 냉가슴만 앓고 있다.

11일 금융업계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는 성동조선해양의 신규자금 지원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 자금 지원은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일 뿐, 추가자금 지원 요청이 9월께 다시 나올 것이란 관측에서다.  지난 8일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3000억원을 단독 지원하고 향후 손실분에 대해서는 채권은행들이 채권액 비율만큼 손실을 분담하는 내용의 지원안을 상정했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거듭된 반대로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앞서 성동조선해양은 4200억원 규모의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였다. 신규 선박 건조를 위한 자재구입 및 협력사 대금 지급 등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선가가 상승한 2013년부터 수주를 이어왔고 지난해는 목표량을 초과수주한 회사가 배를 지을 자금이 없어 채권단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헤비테일(Heavy-tail) 계약방식이 원인이라는데 조선업계는 입을 모은다. 리먼사태 이전인 2008년까지 조선업계는 스탠더드(Standard) 방식의 선박 대금 지급방식을 통해 선박의 계약(RG발급)과 절단(착공), 탑재, 진수, 인도시 각각 20%씩 대금을 나눠 지급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해운시장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선주사들은 리스크 부담을 덜기 위해 기존 20%씩 나눠 지급하던 대금을 10%씩으로 낮춘 뒤 나머지 60%를 인도시에 지급하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전환한 상황이다.

즉 조선소는 선박 건조를 위해 일정하게 자금이 필요한 반면, 선주로부터 받는 자금은 후반부에 집중돼 ‘자금수급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비테일 계약 방식은 대형조선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례로 삼성중공업은 지난 달 오세아니아선주로부터 수주 받은 드릴십(Drillship) 2척에 대한 인도 지연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대중공업도 건조중인 반잠수식 시추설비 3기(현대삼호조선 1기 포함)의 인도가 지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인도지연은 전체 선가의 60%나 되는 잔금을 늦게 받게 되는 것으로 이는 곧 고정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면서 “공기가 지연될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늘어남과 동시에 자금수혈이 늦어져 수익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다. 슈퍼 갑(甲)이 발주처라면 조선소는 슈퍼을(乙)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 한 척 수주가 절실한 상황에서 가격만 맞는다면 우선 수주를 받는 게 국내 조선소의 실정”이라며 “해외 선주들이 헤비테일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은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최근 성동조선해양 사태를 보면 금융회사들이 비올 때 우산 뺏는 격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면서 “중소조선소 지원을 위해 선박제작금융 확대 등 정부 중심의 다양한 노력과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