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81년 만에 최대 강진 "예견된 악몽…주민 죽인 건 지진 아닌 건물"

2015-04-26 15:50
규모 7.8 강진…1910명 사망·4718명 부상
세계 각국 구호·애도 물결 美 구호금 10억원 전달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25일 정오 직전 발생한 강진으로 1900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네팔 정부가 26일 밝혔다. [사진= 유튜브 'Breaking News']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에 사망자가 1910명, 부상자가 4718명으로 집계됐다고 네팔 정부가 26일 밝혔다. 미렌드라 리잘 네팔 정보장관은 “이번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4500여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지진의 규모는 1934년 카트만두 동부를 강타한 강진(규모 8.0 이상) 이후 81년 만에 최대다.

25일 오전 11시 56분 첫 지진 발생 후 지금까지 65차례가 넘는 여진이 계속됐다. 네팔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이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깔렸고 기온도 14도까지 떨어져 희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카트만두에 1832년 세워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62m 높이 다라하라(빔센) 타워가 이번 지진에 완전히 무너져내려 이곳에서만 최소 50여 명이 파묻혀 사망했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군에서도 지진의 여파로 등반을 준비하던 산악인 최소 17명이 숨졌다.

지진은 인도 북부, 중국, 방글라데시, 티베트, 파키스탄 등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곳에서 숨진 이들은 60여 명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사망자는 파악되지 않았다. 대사관에 따르면 네팔에는 우리 국민 650여 명이 체류하고 있다.

◇ 예견된 악몽…“주민 죽인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

일각에서는 네팔 지진의 피해가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지진학자 50여 명이 불과 일주인 전 카트만두에 모여 지진 피해를 어떻게 줄일지에 관한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회의에 참석한 지진학자인 제임스 잭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네팔 지진 발생 후 “언젠가 나타날 예견된 악몽이 실현됐다”고 말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품은 네팔은 지형 특성상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지각이 솟구쳐 생긴 지형이기 때문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참사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네팔이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기도 했다.

내진 설계를 고려하지 않는 네팔의 느슨한 행정도 지진 피해가 커지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건축규제가 없어 낡고 부실한 건물이 즐비했고 자녀에게 똑같이 땅을 나눠주는 네팔 특유의 상속법령 탓에 좁은 부지 위로 건물이 높게 치솟아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진 전문가들은 이번에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제임스 잭슨 교수는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카트만두의 피해는 인재”라며 “주민을 죽인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었다”고 강조했다.

진원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았다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km, 대표적 휴양·관광도시인 포카라에서는 동쪽으로 68km 떨어진 람중 지역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의 진원 깊이는 약 11km로 얕은 편이다. 영국 개방대학(the Open University)의 데이비드 로서리 교수는 “(네팔 지진의) 진원이 얕았기 때문에 지표면의 흔들림이 더 심했다”고 설명했다.

◇ 세계 각국 구호 물결

네팔 대지진으로 막심한 인명·재산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지원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은 네팔에 긴급 재난구호팀을 파견하고 초기 구호자금으로 100만 달러(약 10억8000만원)를 전달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 독일,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이스라엘, 멕시코 등도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EU는 네팔 정부에 구호금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인도 공군은 텐트와 식품 등 구호물품 43t을 네팔에 긴급 공수했으며 200명에 달하는 구조대를 파견했다. 적십자, 옥스팜, 국경없는의사회(MSF) 등 국제 자선단체들도 네팔로 대원들을 급파하고 있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는 “네팔의 옛 왕궁과 수백 년 된 사원 등 오래된 건물 상당수가 무너진 데 대해 재건을 위해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박타푸르 두르바르 광장 등 네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총 7곳 가운데 4곳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세계 저명인사의 애도 메시지도 전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지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대체 불가능한 문화 유적의 손상이 있었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네팔 가톨릭에 전보를 보내 강력한 지진으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자신의 트위터에 “영국이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