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 '단말기유통법과 규제 패러다임의 변화'
2015-04-21 15:31
"단통법 논의, 솔로몬의 지혜 필요한 때"
정보에 밝은 일부 소수의 이용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수 십 만원씩 싸게, 심지어는 공짜로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었던 반면에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일명 ‘호갱’이라 불리며 제값을 다 주고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기형적 시장이었으며, 유통점들의 상술에 실제 공짜가 아닌데도 공짜처럼 오인․착시하여 가입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러한 점들이 가계통신비 부담으로 나타났다는 점에 우리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법은 이러한 통신시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무엇보다 단말기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시하여 누구나 차별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전국 어느 곳에 있는 이동통신 유통점에 들어가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더라도 부당하게 차별받는 일이 없는 유통환경이 만들어 졌다.
법 시행 직후 일시적인 단말기 수요 감소도 있었으나 작년 연말부터는 그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고, 알뜰폰․중저가폰 이용 증대 및 고가요금제․부가서비스 감소 등 합리적인 소비 확산과 통신과소비 감소 등의 긍정적인 변화도 수반되고 있다. 가입 당시의 단말기 지원금만이 아니라 이용기간 전체의 요금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이용자들이 늘어감으로써 유통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단말기유통법은 통신시장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왔다. 불법행위로 인한 시장과열이 일어날 경우 즉각적이고 신속한 대응, 시장과열 주도사업자에 대한 단독조사 등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게임의 룰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된 시장 환경에 이통사·제조사·유통점 모두 적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간,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사업자간 불법적인 지원금 경쟁이 발생할 경우 해당 사업자 모두를 조사․제재해 왔으나, 이는 불법행위 제재를 통해 받는 손실을 불법행위 주도를 통해 얻는 이득보다 낮춤으로써 불법행위의 동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였고, 결과적으로 이용자차별 해소 및 시장안정화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작년 11월 아이폰6 대란, 그리고, 금년 1월 SK텔레콤의 불법행위 사례와 같이 시장과열 시 즉각적인 대응과 해당 사업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SK텔레콤에 대한 조사 및 제재는 단말기유통법에 따른 새로운 시장 환경으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독조사 결과를 토대로 오랜 시간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과징금과 더불어 신규모집금지의 제재조치를 의결하였다. 이중 신규모집금지의 구체적인 시기는 국내외 시장상황과 향후 시장과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다수가 엄정한 제재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부에서는 신규모집금지의 시기를 미룬 것이 봐주기라는 시각이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심결과정에서 규제의 실효성과 합리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 부분이며, 결국 소비자․유통점․단말기 제조업체에 미치는 영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이다.
예를 들어 신규모집금지가 일선 유통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 대표적이다. 사실 작년 3월에도 신규모집금지 제재를 의결한 후, 그 시행은 9월에 한 전례가 있기도 하다. 단말기유통법의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은 이동통신 시장의 활성화와 이용자 차별의 해소라는 정책목표간 적절한 이익형량을 필요로 한다. 봐주기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국내외 시장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경직적이고 기계적인 규제 집행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말기유통법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사업자, 그리고 이용자 모두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