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수 단상

2015-03-02 15:21

[사진=주진 기자]

아주경제 주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가 늦어진 것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고 표현하자 때아닌 ‘국수론’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잘못된 반죽’, ‘불량국수’, ‘삶지도 못한 국수’ 등등 난타전을 벌이기도 했고, 인터넷 상에서는 누리꾼들의 다양한 패러디물까지 등장해 조소거리로 전락했다.

박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 발언이 ‘자다가 봉창 두르리는 소리(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라는 비판처럼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은 자명해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 때 밝힌 청와대 조직개편은 마무리까지 꼬박 두 달 걸렸다. 후임 비서실장은 김기춘 실장 사의 표명 후 열흘 만에서야 발표됐다. 후임비서실장 하마평 기사만 일주일 넘게 쓰다 지친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박근혜정부 인사야말로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박근혜정부의 ‘불어터진 국수’는 인사뿐만 아니다. 집권 3년차에 접어 들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경제, 민생,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들은 곳곳에서 설익거나 불어터지거나 삶지도 못하거나 국수 면발이 제각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박근혜정부의 20대 분야 674개 세부공약에 대한 이행 수준을 평가한 결과, 이들 공약 중 완전 이행된 것은 249개로 전체 공약의 37% 수준에 불과했다. 기존 공약보다 후퇴해 실행된 것은 239개(35%)였으며 이행조차 되지 않은 공약도 182개(27%)나 됐다.국민대통합 분야의 공약 이행률은 ‘제로’였다.

대선 핵심공약인 경제민주화 공약 18개 중 이행된 것은 5개뿐이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방지 등 공약은 기업의 사기 문제로 논의 테이블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3년 11월 이후부터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도 자취를 감췄다.

과거처럼 대기업 성장의 ‘낙수효과’도 사라진 지금에는 유일한 대책은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진작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는 실정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신규고용도 줄이고 임금도 동결하고 있고, 사내 유보금만 쌓아둔 채 투자도 늘리지 않고 있다.

박근헤정부의 친기업정책이 민생경제와 거리가 먼 이유다. 게다가 지난 2년간 장밋빛공약과 현실 사이 괴리는 더욱 더 깊어졌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은 보육, 교육, 안전만큼은 남성 대통령보다 더 잘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까닭이다. 박 대통령의 이미지인 원칙과 신뢰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0-5세 무상보육 공약 중 3살에서 5살의 누리과정 지원은 2년째 22만원으로 동결된 상태다. 보육교사의 열악한 처우 속에서 이뤄지는 아동학대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정작 부모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5.2%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돌봄교실 확대 운영, 사교육비 절감, 고교무상교육, 대학 반값등록금 시행, 기초연금 공약은 일찌감치 경로를 이탈했고, 비정규직 대책의 경우 오히려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 고착화 대책을 내놔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약속했던 공약 대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어터진 국수, 삶지 못한 국수 격이다.

앞으로 3년이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한계는 어쩌면 핑계일수도 있다. 야당이 발목만 잡고 있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언제까지 불쌍한 국민에게 불어터진 국수만 먹게 할 것인가, 이제 박 대통령이 답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