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최호중 전 외교부 장관 영결식 윤병세 장관 추도사
2015-02-23 10:31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선배 장관님과 선·후배 동료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국외교의 거목으로서 우리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故 최호중 장관님과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지만 이제 외교부 전 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장관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고인께서는 북방외교의 산 증인이시자 한국 외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이셨습니다.
장관님께서는 1956년 외무부에 입부하신 후, 36년여 동안 공직에 계시면서 상공부차관·외무부장관·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을 역임하시는 등 다방면에서 국익을 위하여 눈부신 활약을 펼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북방 장관’ ‘북방외교의 첨병’ 등 장관님을 향한 수많은 수식어들이 말해주듯, 장관님께서는 1980년대 말 냉전종식이라는 세계사적 대변혁기에 북방외교를 주도하시며 우리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셨습니다.
특히, 1990년 9월 유엔총회에서 당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서로에게 이롭고 올바른 일이라면 당장 수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여 결국 1991년 1월 1일로 예정되어 있던 소련과의 수교를 3개월이나 앞당긴 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주유엔 대표부 참사관으로서 현장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지금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고인께서는 외무부장관을 마친 뒤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으로 재임하시는 동안에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등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굵직굵직한 족적을 역사에 남기셨습니다.
탈냉전의 국제환경을 활용하여 남북한 간 대결구조를 화해와 협력의 틀로 바꿔 놓은 장관님의 혜안과 전략가로서의 행보는 오늘을 살아가는 저희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신 분야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외교관은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제·통상 분야에서도 발군의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수출진흥이 국가의 사활적 과제였던 당시에 상공부차관, 외무부 경제차관보 등을 역임하시면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및 수출 확대에 앞장서셨습니다.
고인께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하시던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우리 재외공관의 수출진흥 성과를 보고하셨을 당시, 이에 감동하신 박 대통령께서 공관장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하셨고 이를 계기로 청와대 만찬이 공관장 회의의 주요일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민간항공사의 미국 첫 취항, 오일 쇼크 당시 중동산 석유 확보, 우리나라의 연간 100억불 수출 달성 등 우리 경제외교사의 새로운 획을 긋는 현장에는 고인이 함께 계셨습니다.
장관님께서 이처럼 평생 수많은 업적을 쌓으셨음에도 많은 동료 후배들은 그 못지않게 장관님의 인간적 여유와 훈훈함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삶이 수많은 외교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뇌의 여정이었음에도 외교관으로서의 36년 일생을 ‘외교와 춤추며 살아왔다’고 비유하신 데서 보듯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늘 자신을 ‘둔한 말(鈍馬)’이라고 낮추어 말씀하신 데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겸손을 미덕으로 하며 사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고인께서 장관으로 재직하셨을 당시, 바로 옆방에서 차관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장관님께서 저와 같이 한참 젊은 후배들에게까지 베푸셨던 배려와 소탈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관님께서는 국민들을 남달리 사랑하셨습니다. 1988년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사우디에서 귀국하실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선한 우리 국민들이 모두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직 퇴직 후에도 ‘나이든 말(老馬)’은 멈추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자유총연맹총재와 외교협회회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조국과 외교부를 위한 헌신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선·후배 동료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장관님을 보내드리는 슬픔의 자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고인의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우리의 각오를 새로이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금년은 세계적으로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자 독일 통일 25주년, 한반도의 경우에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여년 전과는 달리 전 세계에 걸친 지정학적 갈등으로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 한국 외교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한반도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통일을 이끌어가며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냉전 종식기의 전환기적 도전을 기회로 활용한 장관님의 전략적 사고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고자 했던 홍지(鴻志)를 우리는 변함없이 기억할 것입니다.
독일처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세계에 우뚝 솟는 그날을 위해 장관님께서도 하늘에서 응원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장관님과 평생 고락을 함께 하시며 장관님의 큰 뜻을 펼치는 데 힘이 되어주신 사모님과 유가족 여러분들께도 다시 한 번 깊은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 한국 외교의 역사가 되신 고인께서 멀리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앞길을 비춰주시리라 믿으며, 외교부 전 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장관님의 영전에 머리 숙여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장관님이제 모든 것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선배 장관님과 선·후배 동료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국외교의 거목으로서 우리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故 최호중 장관님과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지만 이제 외교부 전 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장관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장관님께서는 1956년 외무부에 입부하신 후, 36년여 동안 공직에 계시면서 상공부차관·외무부장관·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을 역임하시는 등 다방면에서 국익을 위하여 눈부신 활약을 펼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북방 장관’ ‘북방외교의 첨병’ 등 장관님을 향한 수많은 수식어들이 말해주듯, 장관님께서는 1980년대 말 냉전종식이라는 세계사적 대변혁기에 북방외교를 주도하시며 우리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셨습니다.
당시 주유엔 대표부 참사관으로서 현장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지금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고인께서는 외무부장관을 마친 뒤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으로 재임하시는 동안에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등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굵직굵직한 족적을 역사에 남기셨습니다.
탈냉전의 국제환경을 활용하여 남북한 간 대결구조를 화해와 협력의 틀로 바꿔 놓은 장관님의 혜안과 전략가로서의 행보는 오늘을 살아가는 저희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신 분야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외교관은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제·통상 분야에서도 발군의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수출진흥이 국가의 사활적 과제였던 당시에 상공부차관, 외무부 경제차관보 등을 역임하시면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및 수출 확대에 앞장서셨습니다.
고인께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하시던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우리 재외공관의 수출진흥 성과를 보고하셨을 당시, 이에 감동하신 박 대통령께서 공관장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하셨고 이를 계기로 청와대 만찬이 공관장 회의의 주요일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민간항공사의 미국 첫 취항, 오일 쇼크 당시 중동산 석유 확보, 우리나라의 연간 100억불 수출 달성 등 우리 경제외교사의 새로운 획을 긋는 현장에는 고인이 함께 계셨습니다.
장관님께서 이처럼 평생 수많은 업적을 쌓으셨음에도 많은 동료 후배들은 그 못지않게 장관님의 인간적 여유와 훈훈함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삶이 수많은 외교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뇌의 여정이었음에도 외교관으로서의 36년 일생을 ‘외교와 춤추며 살아왔다’고 비유하신 데서 보듯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늘 자신을 ‘둔한 말(鈍馬)’이라고 낮추어 말씀하신 데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겸손을 미덕으로 하며 사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고인께서 장관으로 재직하셨을 당시, 바로 옆방에서 차관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장관님께서 저와 같이 한참 젊은 후배들에게까지 베푸셨던 배려와 소탈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관님께서는 국민들을 남달리 사랑하셨습니다. 1988년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사우디에서 귀국하실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선한 우리 국민들이 모두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직 퇴직 후에도 ‘나이든 말(老馬)’은 멈추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자유총연맹총재와 외교협회회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조국과 외교부를 위한 헌신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선·후배 동료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장관님을 보내드리는 슬픔의 자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고인의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우리의 각오를 새로이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금년은 세계적으로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자 독일 통일 25주년, 한반도의 경우에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여년 전과는 달리 전 세계에 걸친 지정학적 갈등으로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 한국 외교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한반도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통일을 이끌어가며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냉전 종식기의 전환기적 도전을 기회로 활용한 장관님의 전략적 사고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고자 했던 홍지(鴻志)를 우리는 변함없이 기억할 것입니다.
독일처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세계에 우뚝 솟는 그날을 위해 장관님께서도 하늘에서 응원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장관님과 평생 고락을 함께 하시며 장관님의 큰 뜻을 펼치는 데 힘이 되어주신 사모님과 유가족 여러분들께도 다시 한 번 깊은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 한국 외교의 역사가 되신 고인께서 멀리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앞길을 비춰주시리라 믿으며, 외교부 전 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장관님의 영전에 머리 숙여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장관님이제 모든 것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