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시를 읽다(34)] 롯데가 선택한 동북3성 '맏형도시’ 선양
2015-01-28 07:58
최근엔 동북3성 진흥책이 적극 추진되며 선양은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기업들도 선양으로 몰려가고 있다. 지난해 5월 롯데백화점을 오픈한 롯데그룹은 오는 2017년까지 선양에 ‘중국판 롯데타운’을 건설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선양이라는 이름은 도시가 선수이(瀋水)의 북쪽에 위치한 데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볕 양(陽)’이 들어간 지명은 강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북한·러시아·몽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3성 지역의 군사를 책임지는 선양군구 중추도시 선양은 예로부터 중국 동북지역의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다.
예로부터 선양이 만주식으로는 버드나무 울타리를 둘렀다는 뜻의 '묵던(Mukden)’이라 불린 것도 과거 만주족이 세운 청 나라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유조변(柳條邊 버드나무 울타리)이 선양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라 전해져 내려온다.
선양은 청 나라가 19년간 수도로 삼은 곳이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선양을 점령한 후 1625년 랴오양에서 천도해서 도읍으로 삼고 '번성한 수도'라는 뜻으로 성경(盛京)이라 불렀다. 이후 1644년 베이징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선양은 ‘하늘(천자)를 받들다’는 뜻의 봉천(奉天)이라 불리며 '제2 수도'로 대접받았다.
과거 일본이 대륙침탈의 관문도시로 삼은 것도 선양이었다. 일본군이 1931년 9월18일 중국 선양(瀋陽) 근교의 남만주 철도를 폭파한 뒤 이를 중국에 뒤집어 씌운 뒤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에 나선 것.
일제 패망 후 국공내전 때에도 선양을 놓고 국민당과 공산당은 52일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유명한 랴오선(遼瀋)전투다. 여기서 국민당을 격퇴한 공산당은 국공내전 승리의 결정적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신 중국 설립 후 선양을 비롯해 창춘(長春)·하얼빈(哈爾濱) 등 동북3성 주요 도시들은 중공업 도시로 육성됐다. 소련과 가까워 경제 기술적 원조를 받기 수월했을 뿐 아니라 풍부한 지하자원과 일제 강점기 건설된 공업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양 제일공작기계공장, 창춘 제일자동차, 안산철강 등이 당시 육성된 대표 국영기업이다.
하지만 국가투자 위주로 발전했던 동북3성 지역은 중국 개혁개방의 물결에 편승하지 못한 채 상하이·선전 등 주장·창장 삼각주 지역에 밀리며 경제도 급격히 기울었다. 선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양이 다시금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제창한 동북지역 노후공업기지 진흥정책으로 선양의 지역경제도 살아나기 시작한 것.
2009년부터는 다롄(大連)을 국제물류 기지로 육성하는 것을 축으로 한 랴오닝연해경제벨트와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을 연결한 '창지투' 개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하얼빈·창춘· 선양·다롄 등 동북3성 주요도시를 잇는 고속철이 개통되는 등 교통 인프라도 대거 확충됐다. 덕분에 선양은 동북3성 물류기지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두 자리 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랴오닝성 정부는 선양 주변 100㎞ 이내에 위치한 안산(鞍山), 잉커우(營口), 랴오양(遙陽), 테링(鐵嶺) 등 인근 8개 도시를 묶어 총 면적 7만5000㎢, 인구 수 2000만명 이상의 거대 도시권으로 육성 중이다.
지난 2003년부터는 선양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총 13㎞길이의 '골든회랑(金廊)'도 건설했다. 이곳은 오피스 사무기능에 더해 각종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돼 선양시 투자를 견인하는 최대 상업중심지역으로 떠올랐다.
최근 중국 경기 둔화세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양은 과거 국유기업 중심의 경제를 개혁하고 서비스, 금융, 물류·유통 등 분야에서 대외개방을 추진하며 동북아 물류기지로 발돋움하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