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고용시장] 취업 못한 20대들 눈칫밥 코칫밥 “나는 루저입니다”
2015-01-22 16:48
아주경제 박성준 기자=2013년 이른바 인(In)서울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로 취업준비 3년차로 접어든 윤모씨(26·여)의 하루는 거의 모든 조간 신문을 훑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문에 나온 구직광고를 우선 살피고, 주요 뉴스를 숙지하기 위해서다. 인·적성 시험의 상식 문제나 토론면접에서 최근 시사 상식이 단골 메뉴로 오르기 때문이다.
신문을 정독하고 나면 다음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사이트를 꼼꼼히 모니터링 한다. 윤씨는 “채용공고가 올라온 기업들의 지원 요강을 확인하고 쓸 만한 곳의 리스트를 작성한다”며 “이후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쓰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대학졸업 후 지금까지 지원서만 100여개 이상을 썼다. 하지만 대부분은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기 일쑤다. 지난해에는 2월부터 두달간 한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마저도 취업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막상 정규직 선발에선 최종 면접 과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윤씨는 "이제는 구직 원서를 쓰면서도 정작 합격이 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우선 불안한 마음에 원서라도 내보자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계속된 낙방에 윤씨는 친구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부모님에게 미안한 감정도 든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친구들끼리도 취업한 그룹과 준비하는 그룹으로 나뉜다”며 “요즘은 하루 종일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우울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4년 15~29살 청년층 실업률은 9%로 1999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대학진학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대졸 고학력 실업률이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한국교육통계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연도별 대학 진학률을 살펴보면 1990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10년 후인 2000년에는 그 두 배인 68%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에는 대학 진학률이 소폭 하락 추세지만 지난해는 71%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해 아직까지 높은 수치를 보였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민간기업을 포기하고 안정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구직자도 늘고 있지만 공무원 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어서 좌절감만 커지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다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일컫는 말)으로 돌아선 배모(29)씨는 “예전에 비해 자신감이 많이 줄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배씨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맞추기 위해 재학시절 학점관리 및 각종 자격증을 따는데 힘을 쏟았다. 토익 점수를 따기 위해 영국으로 6개월간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배씨의 이러한 노력에 취업 성공은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배씨는 지금까지 약 150여개의 원서를 작성해서 10%의 서류합격률을 보였다고 한다. 그 중 절반이상은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배씨는 매번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배씨는 “자소서를 많이 쓰다 보니 점점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라며 “부모님의 은퇴가 다가오기에 좀 더 확률이 높은 공무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배씨의 최근 활동 무대는 공무원 시험 관련 학원이 밀집된 노량진이다. 배씨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자습을 하러 일부러 학원에 간다”며 “사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해주기 때문에 학원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고 털어놨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재기를 노린다는 뜻에서 노량진은 취준생들에게 '패자부활전장'으로 통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