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시를 읽다(33)] 개성공단·새만금이 벤치마킹하는 '쑤저우'
2015-01-21 06:00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최근 우리나라 새만금간척지나 개성공단 미래 발전모델을 논할 때 자주 벤치마킹되는 중국 도시가 있다. 바로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다. 지난 1994년 중국과 싱가포르가 공동개발한 ‘쑤저우 공업단지(蘇州工業園區)’는 중국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한 첫 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다. 오늘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외자유치의 상징 모델로 통한다. 중국은 토지를, 싱가포르는 자본과 기술력을 제공해 외자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지역경제발전을 이끈다는 이른바 ‘쑤저우 모델’이다.
쑤저우가 중국 대표 공업도시로 발돋움한지는 20여년에 불과하다. 사실 쑤저우는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오(吳) 나라 수도로 유서 깊은 역사고도(古都)다. 수(隨) 나라 때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杭州)를 잇는 약 1700㎞의 징항(京杭)대운하가 완공되면서 쑤저우는 창장(長江) 지역 수상교통 중심지로 발달했다. 덕분에 쑤저우는 물자교류가 활발하고 문물이 크게 번성했다.
징항대운하로 둘러싸인 쑤저우 곳곳에는 인공하천들이 마치 실핏줄처럼 뻗어있다. 원 나라 때 이곳을 방문한 마르코폴로가 ‘동양의 베니스’라 극찬한 이유다. 옛 관리들은 물길을 따라 곳곳에 아기자기한 정원도 지었다. 중국 4대 정원으로 꼽히는 졸정원(拙政園)은 고전 홍루몽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쑤저우 경제의 고속성장은 중국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특히 창장 유역에 위치한 쑤저우는 상하이(上海)에서 8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유리한 지정학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규모 농촌기업이 대거 발달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부자 도시로 성장했다. 중국 개혁개방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샤오캉(小康) 사회’의 이상적 모델로 쑤저우를 꼽았을 정도였다.
쑤저우는 덩샤오핑이 1979년 당시 20년 후인 2000년까지 샤오캉 사회 건설을 통해 달성하기로 한 1인당 소득 800달러 목표를 이미 1982년에 실현했기 때문이다. 1983년 쑤저우를 직접 시찰하며 샤오캉 사회의 실현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한 덩은 이후 샤오캉 사회 이야기를 꺼낼때마다 쑤저우 시찰 경험을 곁들였다고 전해진다.
쑤저우공업원구는 중국 중앙정부가 싱가포르를 모델로 외국자본 투자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1994년 시범적으로 개발한 곳이다. 중국의 값싼 토지와 노동력, 싱가포르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졌다. 자국 기업의 중국 진출 거점 확보를 원했던 싱가포르와 외국인 투자유치 과정에서 싱가포르의 선진 노하우 확보가 필요했던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도시계획, 기반시설, 물류시스템부터 채용과 급여, 사회보험제도까지 싱가포르의 방식을 그대로 도입해 건설됐다.
쑤저우공업원구는 279㎢ 규모로 서울시 절반 정도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삼성과 히타치, 지멘스, 파나소닉, 노키아 등 세계 기업 13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인구는 30만여 명에 달한다. 2014년말 기준 GDP는 2000억 위안을 기록했다. 쑤저우공업원구는 쑤저우시 면적의 3.4%, 인구 7.4%를 차지하고 있지만 쑤저우 전체 GDP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쑤저우 경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쑤저우 GDP 순위는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선전 톈진에 이은 6위다.
하지만 공업도시로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환경오염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공업화 과정에서 쑤저우 도심 곳곳을 흐르던 하천이 심각한 오수로 악취를 풍길 때도 있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抗)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에 지난 2006년부터 쑤저우는 ‘4개 백만무(畝,1무=666.7㎡) 농업생산기지 건설 사업’을 추진하며 생태도시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4개 백만무란 식량, 원예, 수산물, 생태숲 등 4개 생태기지를 각각 100만무씩 조성해 ‘어미지향’이라는 쑤저우의 옛 명함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시작됐다.
앞서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양회에서 쑤저우의 아름다운 풍경을 칭찬하며 쑤저우의 생태문명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을 신신당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