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명예회장 “남북통일에 장애된다면 법도 뛰어넘어야”
2015-01-12 15:08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나라의 법은 원칙적으로 존중되어야 해. 하지만 그것이 민족적 숙원인 남북통일이라는 진로에 장애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어야 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 측근들에게 전달한 ‘남북통일’에 대한 소신이다. 해석에 따라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발언이다. 아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자살로 몰아간 4억5000만달러 규모의 대북송금 사건과도 연결시킬 경우 송금의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개최 조건으로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대그룹은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 발언은 박정운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가 2015년 정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간한 저서 ‘이봐 해봤어?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정주영’에 언급돼 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을 지내던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를 지내며 정 명예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그것(법)이 이데올로기든 실정법이든 어디까지나 한 시대의 사상가나 정치 세력이 만들어낸 것이고 이해집단의 의지에 의해, 그리고 시대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서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어. 민족 통일이라는 대역사가 이러한 것들에 의해 방해받기엔 너무나 절실하고 지고하며 영속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
생의 마지막 시기, 신앙이라 여길 정도로 남북통일에 대한 갈망과 집념을 보였던 정 명예회장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인 ‘법’의 한계를 딛고 반드시 통일이라는 거룩한 목표를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었다. 통일을 위해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대북송금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책 속에서 대북 송금을 ‘우호적 관계 개선을 위한 일부 현금 지원’이라고 표현했다.
“북한 사람들이 누구야? 다 김씨, 이씨, 박씨, 정씨, 최씨 아닌가? 남한의 우리들하고 말이 다른가 피부색이 다른가? 그런데 비참한 살상의 전쟁을 치른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땅 한군데를 떡하니 갈라놓고 피붙이 부모형제 처자식 간에 만나게 하기를 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마음대로 소식을 전하게 하나. 외세의 영향이 어쨌건 이것은 결국은 우리 민족의 수치야. 인륜에 대한 배반이고. 그래서 통일은 가능한 한 가까운 장래에 꼭 성사되어야 해”라는 그의 말에서 ‘인간 정주영’이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는 지 드러나 있다.
또한 정 명예회장은 “문제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루느냐 하는 거야. 결국 그것(통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어”라는 말로 남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보다는 북한도 부담이 덜한 민간 경제인이 나서서 비정치적인 분야인 경제·스포츠·문화·관광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이를 실천했다.
박 대표는 “정 명예회장은 민족 통일이라는 대역사가 이러한 것들에 의해 방해받기엔 너무나 절실하고 지고하며 영속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시비에 대한 평가를 최종적으로 후대와 역사에 맡기고 그의 신념을 그 특유의 행동력으로 실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