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뱅킹 사고 속출하는데 금융소비자 보호는 소홀… 은행권 면피 급급

2015-01-08 16:08

[ 아주경제DB]


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지난해 6월 한 지역 단위농협에서 예금주도 모르게 약 1억2000만원이 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텔레뱅킹을 통해 사흘간 건당 300만원씩 모두 41차례에 걸쳐 대포통장으로 돈이 빠져나간 것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 검거는 커녕 범죄 수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금융당국도 감사에 나섰지만 끝내 원인을 찾지 못했다.

SC은행에서도 지난 8월 텔레뱅킹을 통해 고객 통장에서 6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무단 인출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특히 이 경우는 피해자의 텔레뱅킹 서비스가 장기 미사용으로 정지된 상태였는데도 사기범들이 은행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서비스 재개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텔레뱅킹을 통해 예금주도 모르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검사에도 불구하고 원인 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이에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텔레뱅킹 이체 한도를 낮추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지난해 3월 시중은행들이 이체 한도를 한차례 낮춘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텔레뱅킹 등록자는 지난 2013년 기준 4088만명에 이른다. 실제 이용 고객은 1184만명이다.

◆ 책임 소재 불분명… "고객 100% 보상받기 어려워"

문제는 텔레뱅킹 사고의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피해자가 100% 보상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는 사고로 인해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이용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금용소비자의 중대한 과실에 대한 해석이 모호한데다 금융사의 잘못을 증명하기 쉽지 않아 피해자가 보상받기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 판례를 봐도 피해자측이 금융회사의 명백한 책임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대부분 보상을 받지 못했다. 결국 현재로서는 금융소비자 스스로 사고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보안카드 대신 OTP(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를 사용하거나 장기간 이용하지 않는 텔레뱅킹을 정리하는 등 소비자 스스로 신경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금융권, 텔레뱅킹 사고 대책 마련에 분주

텔레뱅킹 사고가 끊이지 않자 금융권은 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NH농협은행 및 농·축협은 다음달 9일부터 텔레뱅킹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안카드 이체한도를 1일 300만원으로 축소키로 했다. 특히 취약시간대인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는 이체한도를 100만원으로 제한한다.

IBK기업은행도 다음달 23일부터 텔레뱅킹 이체 한도를 일괄 축소할 예정이다. 보안카드를 보유한 고객 가운데 텔레뱅킹 이체한도가 1000만원 초과로 설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이체한도를 최대 1000만원까지로 제한한다. SC은행은 지난달 텔레뱅킹 가입 고객 가운데 1년 이상 이체 거래가 없는 장기 미사용 고객을 대상으로 이체 서비스를 중지했다.

금융당국도 오는 3월부터 텔레뱅킹으로 1일 누적 100만원 이상 이체할 경우 문자메시지(SMS)나 자동응답전화(ARS)로 추가 본인확인을 거쳐야 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반기부터는 미리 지정한 전화번호로 텔레뱅킹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1일 이체한도가 300만~50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