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국제시장 비판과 청년의 눈물 [전문가 기고]
2014-12-29 15:12
맥신코리아 대표 한승범
<머리를 잘 썼어.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이 발언에 대해 허지웅 평론가는 ‘토가 나온다’가 영화 ‘국제시장’이 아니라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고 강변하였다.
26일에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영화 ‘국제시장’을 보지도 않았지만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길래”라며, “하여튼 우익 성감대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긴 있나 봅니다”고 폄하하였다.
남이 3년 동안 공들여 쓴 논문을 내게 가져와라! 나는 그것을 단 3시간 만에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필자가 대학연구소에 재직할 때 들었던 비평가에 대한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이다. 주지하다시피 한 유명한 야구 해설가가 실제 감독직을 맡고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물러난 일화가 있다. 그만큼 남 훈수 두는 것과 실제 플레이어로 참가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남이 땀으로 일궈낸 성과물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전 필자는 강남의 한 영화관에서 논란이 된 ‘국제시장’을 봤다. 우선 관객층이 젊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젊은 층에게 진부하게 느껴질 만한 전통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국제시장’에 젊은 세대가 열광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영화의 완성도였다. 흔히 보수적인 가치를 담은 영화들이 흥행에 번번이 실패한 것은 바로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였다. 즉, 재미와 감동이 적으니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어도 관객이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전혀 달랐다.
마지막으로 놀랐던 부분은 흥행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포기한 윤제균 감독의 결단이었다. 역대 흥행 한국영화를 분석해보면 ‘반미’와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란 키워드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미국과 미군을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북한의 ‘인간적인 얼굴’을 부각시키는 것이 마케팅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경제개발을 폄훼해야 ‘의식있는’ 예술인인양 대접받는 게 한국 영화계의 천박한 현실이었다.
지금 온라인에는 국제시장에 대한 평판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당연히 진보적 성향의 누리꾼들은 ‘국제시장’을 하나의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반면에 실제로 영화를 본 다수는 감동으로 눈물을 쏟았다.
불과 6년 전인 2008년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정부를 임기 내내 괴롭혀 거의 식물정권으로 만들었다. 주지하다시피 광우병 사태는 대한민국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미국 소’는 ‘미친 소’라며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아도 생리대, 화장품, 기저귀를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식의 황당한 선동이 난무했고 순박한 국민들 다수가 이에 속아 넘어갔다.
이렇게 미국이라면 뭐든지 반대하고 혐오감을 표출하는 대한민국에서 ‘반미’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흥남철수’라는 착한 이미지의 미군을 표현한 것은 영화 마케팅 측면에서 위험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 전체에 정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아버지’라는 가족애만을 담고 있다.
이런 모습이 진보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종북주의자들은 ‘착한 미군’과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희생과 사랑’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미군이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대한민국의 성공한 아버지들은 서민들을 착취하여 부만 늘린 타도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종북주의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북한 김 씨 3대세습을 미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가을의 효순미선 반미시위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친 대한민국은 이제 반미 선전선동에 내성에 생겼다. 무조건적인 반미에 넌더리가 난 것이다.
필자는 93년 유럽여행을 갔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한 교포 여대생을 만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어에 서툰 딸은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어에 익숙지 않는 부모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픈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처럼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온 부모는 딸을 독일 명문대에 입학시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다 그랬다. 당신들은 피눈물이 나게 못살아도 자식만큼은 호강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사상이 바로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인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한 청년은 펑펑 울었다. 이 눈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