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국산화 부진… ‘현실의 벽’ 높았다

2014-12-21 06:00

[그래픽=아이클릭아트]


아주경제 이재영 기자= 국가 장기과제로 추진돼온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내년까지 50% 달성을 목표로 잡았지만 현재 20~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국산화율 부진은 최근 해외 유수 장비기업간의 합병 추진과 맞물려 잠재적 리스크가 커지는 양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부진해 ‘속빈 강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의 상당 부분을 다시 원천기술을 보유한 외국 장비기업들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의 장비 시장은 미국과 일본, 유럽의 소수기업들이 지배하며 연구개발(R&D) 역량이 부족한 국내 중소 장비기업들은 진입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015년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50% 달성을 목표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07년부터 3년씩 3단계로 총 9년간 최소 36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20% 미만 수준에 머물던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목표 기한이 다가왔지만 아직 성과는 부족하다. 업계는 후공정 장비 국산화가 그나마 진척되며 전‧후공정 합산 국산화율이 30% 수준까지 향상된 것으로 파악하지만, 핵심 장비가 몰린 전공정만 보면 여전히 20% 안팎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천 기술의 확보가 안 되는 것이 국산화가 더딘 근본 원인”이라며 “해외 기업들이 오랫동안 R&D 투자를 해온 것에 비해 국내에는 10~15년 이상 된 장비기업이 없다. 핵심장비 위주로 정부와 민간 합동의 지속적인 R&D 투자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장비산업은 국내외 환경변화가 극심한 산업으로 상황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특성을 지니는 반면, 최첨단 장비개발에 있어서는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투입되는 대기업형 산업의 양면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한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자기업이 구매확약을 조건으로 중소 장비기업 R&D 지원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지원 방안 등을 추진했지만 예산 부담이 크고 자국기업 보호주의 인식 우려 때문에 연속성을 갖지는 못했다.

국산화 부진은 언제든 해외 기업에 휘둘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것이 반도체 장비 1‧3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와 도쿄일렉트론(TEL)간의 합병이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양사의 합병은 독점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승인 여부를 두고 국가 심사가 1년여 동안 지연되고 있다.

양사의 합병은 연관 국내 장비 업체는 물론, 구매 협상력과 결부된 소자 업체, 합병 건에 자본을 댄 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정부가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