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옛말 틀린 거 없어…부모 계실 때 잘해라”

2014-12-17 16:03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라.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윤제균(45) 감독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지난 8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윤제균 감독을 만났다.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국제시장’(제작 JK필름)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덕수(황정민)에 대한 이야기다. “괜찮다”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 눈물 훔치며 살던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에 대한 작품이다. 덕수는 독일 탄광 노동부터 베트남 전쟁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족만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인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다.

윤 감독은 “거창하게 한국사를 관통하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영화의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일찍 소천하신 아버지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버지 세대가 살아오신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포함시켜야만 했죠. 현대사를 위해 아버지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 아버지 얘기를 위해 현대사를 넣은 것이죠.”

이는 ‘국제시장’의 영어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제시장’의 영제는 ‘Ode To My Father’이다. 직역하면 ‘나의 아버지께 드리는 송시’라는 의미다.

“어떤 정치적 색깔이나 사회 비판적인 영화가 아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송가, 또는 헌사 같은 영화”라면서 “이제는 많이 담담해졌는데 아직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짠함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윤제균 감독은 “지금도 아쉬운 것은 살아계실 때 표현했어야 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얘기 하면 좀 그렇지만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 잘하고 싶어도 옆에 안 계시면 해드릴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시장’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지만 그 아버지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영화라고 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온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희생한 아들이자 누군가의 아버지.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죠.”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콧등이 시큰해질 무렵, 출연배우들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국제시장’에서 노인분장을 한 황정민에 대해 “노인 분장이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007 스카이폴’ 특수분장팀과 함께 작업을 했다”는 윤 감독은 “보통은 ‘통’으로 노인 분장 가면을 쓰는데 황정민은 8개의 조각으로 나눠 붙였다. 김윤진은 6개였다. 통가면은 얼굴 근육을 못 쓰는 단점이 있는데, 조각으로 나누면 이를 보완할 수 있다. 황정민의 얼굴에 희로애락이 다 보여야 했기 때문이 해당 업체를 선택했다. 나중에는 4시간 만에 분장이 완성됐다”고 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황정민은 일부러 살을 뺐더라고요. 탑골공원에서 노인분들을 직접 만나 분석했고 김윤진은 노인체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 며칠을 노인체험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어려운 것은 젊어 보이게 만드는 거죠. 다들 배우들의 나이를 알고 있는데 가발만 쓰고 나오면 코미디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떻게든 20대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업체를 다 돌아보고 조사를 했죠. 화장으로 젊어보이 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또 결정적으로 화장을 하면 클로즈업을 못해요.”

그러다 찾은 업체가 일본의 CG회사였다. 윤 감독에 따르면 일본에서 TV CF 전문 CG업체 ‘포텐사’는 10년 이상 한 화장품 광고 전속모델로 활동 중인 배우의 얼굴을 젊어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Age리덕션’ 기술로 세계에서 유일하단다. 한태정 슈퍼바이저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협력을 제안했다. 영화 작업을 해본 적도 없었지만 문제는 가격.

그러나 해당 업체는 첫 영화 도전이라는 의의 아래 가격을 절충했고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 등 배우들은 20대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배우들의 만족도가 컸다”는 그는 “큰 스크린에서 자신이 젊어진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더라”라고 귀띔했다.

영화 속에는 70대 분장을 한 황정민과 김윤진이 남진과 나훈아를 놓고 누가 더 멋진 가수인지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황정민은 남진을, 김윤진은 나훈아를 꼽는데 다 이유가 있다. 스포일러에 가까운 내용이라 언급할 수 없지만 실제로 윤 감독의 아버지는 나훈아를 좋아했고, 어머니는 남진을 좋아했다고.

영화에서는 반대이지만 윤제균 감독은 이 부분을 위트 넘치는 연출로 또 다른 웃음을 유발했다. 덕수의 여동생 끝순이(김슬기)가 결혼하는 상대가 나훈아를 닮아 황정민이 못마땅해하는 것. 나훈아 닮은꼴로 캐스팅된 배우는 성낙경이다. 성낙경은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맡은 정청의 반대파 이중구(박성웅)의 심복으로, 황정민에게 칼을 겨눈 인물로 분한 바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끝으로 윤 감독에게 흥행 욕심에 대해 물었다.

“15년 동안 영화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생긴 기준은, 흥행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흥행이죠. 그냥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잘된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안 된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신’만이 알겠죠. 5년 만에 연출자로 돌아왔는데, 관객들이 5년 동안 뭐했느냐는 소리를 하면 창피할 것 같아요. 여러모로 부담이 된 작품인데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출했습니다. 배우분들, 스태프분들, 투자자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그래도 부담은 많이 되네요. 하하.”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로 17일 개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