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놓고 스텝 꼬인 與野…‘지지율 딜레마’ 어찌할꼬
2014-12-04 15:59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청와대발(發)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정국의 태풍으로 부상하면서 여야가 ‘지지율 딜레마’에 빠졌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파문 직후 ‘문건 유출(집권여당) 대 국정 농단(범야권)’ 프레임을 짠 여야는 실체 규명 없이 각종 의혹만 난무하게 되자 전략 수정에 나선 모양새다.
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관천(48) 경정이 검찰에 출석한 4일 여야의 전략은 그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가 풍겼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국면에서 여야가 스텝이 꼬이면서 지지율에 상처가 나자 전략 수정을 꾀한 셈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여야의 전략수정을 “지지율의 딜레마”로 규정했다.
◆與, ‘정윤회 말 바꾸기’ 논란일자 ‘거리두기’ 시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무원연금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숙명적 과제”라고 말했고, 이완구 원내대표는 “오는 8∼9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300여건의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측면지원에 나섰다. 집권여당의 ‘원투펀치’인 이들은 이날 ‘정윤회’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 파업 △이인제 최고위원은 북한인권법 통과 △김을동 최고위원은 만취한 성형외과 전문의의 수술 행위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세월호 사건의 배·보상 관련 법안 등을 언급했다. 새누리당이 이날 의제의 다양화를 꾀한 것은 정윤회 파문에 집중된 이슈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기류 변화는 전날 오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간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한 야권을 향해 “질 나쁜 정치공세”, “국정 흔들기” 등의 말을 써가며 날선 비판한 새누리당은 이날 정씨의 잇단 인터뷰에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수년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한 정씨의 발언이 뒤집히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자 ‘거리두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野, ‘先 정윤회 특검·국조’-‘後 사자방 국조’로 전환 조짐
주목할 대목은 새누리당이 정씨를 비판하면서도 청와대 ‘그림자 권력’의 한축인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과 ‘지지율 공생관계’인 새누리당이 정씨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박 회장을 비판할 경우 청와대 권력암투는 단숨에 ‘집안싸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전략 수정에는 공격 타킷을 전환하지 않을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셈법이 깔렸다는 얘기다.
제1야당은 이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대통령의 비선실세 정씨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 의혹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힐난했고, 안규백 수석부대표는 “청와대 문서 유출 등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은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그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 산하의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도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수년째 만난적이 없다던 정씨의 거짓말 의혹을 고리로 ‘말 바꾸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새정치연합이 정윤회 게이트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슈 분산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당 내부에선 ‘MB(이명박)정부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속도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先)국정농단 특검·국조’-‘후(後)사자방 국조’ 쪽으로 기류가 바뀐 셈이다. 다만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사자방 국조 활동은 이어나가기로 했다.
배 본부장은 여야의 전략 수정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받는 새누리당은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의 커질수록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도 야당도 아닌 ‘정윤회’라고 하는 제3의 인물에 공세를 취한 이유”라며 “야권의 경우 문건 유출이 아닌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대개조와 경제민주화 이슈를 끌고 간다면, 지지율 상승으로 사자방 국조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