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명분 잃은 담뱃값 인상

2014-11-02 16:47

담뱃값 인상이 뜨거운 감자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담뱃값을 2500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후 최근 국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원안대로 내년 1월부터 2000원의 인상이 이뤄지게 되면 현재보다 2조2000억~5조8000억원의 세수증가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출고가 및 유통 마진을 제외한 세금 비중이 현재 62.0%에서 73.7%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국민 건강’을 담보로 세수 확보를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지나친 세수확보로 인해 서민들의 허리띠만 조이는 꼼수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인상된 담뱃값 중 18.7%를 차지하게 될 국민건강증진기금의 경우 기금 본연의 목적에 맞는 건강생활실천 사업에는 겨우 5% 안팎의 기금이 사용돼왔기 때문에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담뱃값 인상’이라는 정부의 설명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 대책이라는 명분을 갖게 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항목의 사용용도가 흡연자의 건강과 무관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사용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를 보면 담뱃세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애초 목적과 달리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건강증진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자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해 담뱃세를 재원으로 1997년부터 조성됐다.

하지만 이 기금이 국민건강생활실천을 위한 여건 조성 사업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데 대부분 사용됐다.

2003~2005년에 건강증진기금의 95% 정도가 건강보험 지원에 쓰였다. 2004년 담뱃세 인상 이후 기금규모가 커지면서 2006~2013년에는 그 비율이 54~73%로 점차 낮아지긴 했지만, 지난해에도 기금 총 예산의 49%에 해당하는 1조198억원이 건강보험 재원으로 쓰인다.

본래 목적인 건강생활실천 사업에는 겨우 5% 안팎의 기금이 투입됐고 건강증진연구조사에는 0.5% 정도의 예산만 쓰였다. 금연과 흡연예방 지원사업에는 1% 정도만 사용됐다.

건강증진기금이 절반 이상이 목적세의 취지에 맞지 않게 건강보험 재정지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에 대해 흡연자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가 “담뱃값 인상으로 걷힌 세금이 국민 건강을 위해 쓰이지 않고 다른 쪽에 사용된다면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명분을 갖긴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 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를 상대로 537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세수 확보를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제대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특히 최근 10년만에 고개를 든 주류세 인상 방안도 세수 확보에 혈안이 된 정부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민증세를 통해 국고를 채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한민국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흡연자들에게 꾸준히 금연을 권유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세수확보’라는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정부의 정책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국민에게 솔직하지 않는 정부는 서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강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서민증세를 해야 하는 이유와 사용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