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겪는 조선족 사주 청부살해'…7개월 수사 끝에 범인 체포

2014-10-15 13:44

아주경제 최수연 기자 = 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이 미제로 묻힐 뻔했다가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7개월 만에 피의자들을 체포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살인 및 살인교사, 살인예비 등 혐의로 조선족 김모(50)씨와 S건설업체 사장 이모(54)씨, 브로커 이모(58)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3월 20일 오후 7시 20분께 강서구 방화동의 한 건물 1층 계단에서 K건설업체 사장인 A(59)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S건설업체 사장인 이씨는 브로커 이씨에게 A씨를 살해해달라고 청탁한 혐의, 브로커 이씨는 김씨에게 A씨를 살해하라고 사주한 혐의다.

지난 2006년 7월 K건설업체와 S건설업체는 경기 수원 지역 일대의 신축 아파트 현장 토지 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일부 토지가 매입되지 않아 공사에 차질을 빚게 되자 K건설업체 사장 경모(59)씨는 S건설업체 사장 이모(54)씨에게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이씨는 곧바로 평소 알고 지낸 지인 2명과 토지 매입 작업 용역계약을 다시 체결한 뒤 지난 2010년 8월 수원지법에 '토지 매입 대금 5억 원을 K건설업체가 지불하기로 약정했다'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해 K건설업체가 법원에 공탁해 놓은 5억 원을 받았다.

이에 경씨는 지난 2012년부터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 항소했고, 법원은 경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받은 5억 원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등을 허위 이전하는 등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갈등을 빚던 양측은 서로 고소·고발을 일삼는 등 5년 가까이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앙금이 생겼고, 이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씨는 현금 2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하거나 자신이 조직폭력배라며 협박하면서 소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는데도 소용이 없자 결국 소송을 담당한 K건설업체 직원 B(40)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9월 본거지인 수원에서 30년 넘게 알고 지내던 브로커 이씨에게 "보내버릴 사람이 있는데 4000만원을 줄 테니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브로커 이씨는 수원 지역 '세계 무에타이·킥복싱 연맹' 이사를 지내면서 중국에서 체육 관련 행사로 알게 된 중국 연변 공수도협회장 김씨에게 연락했고 김씨는 청탁을 받아들였다.

김씨는 그때부터 2개월간 K건설업체 주변을 배회했지만 B씨가 퇴사한 뒤여서 소재 파악에 실패했고, 결국 범행 대상은 A씨로 바뀌었다.

한국에 살고 있던 가족을 만나러 2011년 국내로 들어온 김씨는 단순노무가 불가능한 F-4 비자를 받은 터라 돈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브로커 이씨의 청탁을 쉽게 받아들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 초기 범인을 특정할 만한 증거나 단서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증거라고 해봐야 현장 인근에 있던 폐쇄회로(CC)TV 영상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하나의 점'으로 보일 정도로 희미했고, 신방화역 방향으로 도주하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희미한 단서였지만 사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 절대 놓칠 수 없었던 경찰은 강력 7개팀과 서울경찰청 2개팀으로 구성된 수사전담팀을 꾸려 서울 강서구 방화동과 공항동 일대를 이 잡듯이 뒤졌다. 또 피해자 주변인물과 금전거래자, 소송 대상자 등 1870명에 대해 집중 탐문을 벌여 용의자를 추려냈다.

경찰은 용의자가 공항동의 KT 전화국 건물 앞을 걸어 지나갔다가 2분35초 뒤에 돌아오는 장면이 녹화된 CCTV영상을 확보했다. CCTV 영상에는 피의자로 보이는 인물의 발목만 녹화돼 있었다.

경찰은 2분35초 안에 걸어서 왕복 가능한 반경 이내의 현금인출기와 공중전화기 등을 집중 수사했다. 결국 김씨가 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한 사실을 파악해 김씨의 신원을 알아냈다.

경찰은 CCTV에 녹화된 인물과 김씨가 동일인임을 증명해 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영상을 보내 신장 계측을 하고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의뢰해 영상 속 용의자의 걸음걸이 분석을 했다. 법영상분석소 등 민간기관에 의뢰해 동일인 감정까지 받았다.

결국 조선족 김모씨를 피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김씨의 통화내역과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해 김씨에게 살인을 교사한 S건설업체 사장 이씨와 이 둘을 연결한 브로커 이씨를 찾아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일체를 시인했으나 교사범 이씨와 브로커 이씨는 모두 혐의를 전면 또는 일부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선족이 낀 청부살해 사건 피의자들을 검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날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