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프랑켄슈타인', '박해수 괴물' 탄생

2014-10-15 11:03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서 11월9일까지 공연

[예술의전당 연극 프랑켄슈타인]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1818년에 나온 이 소설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괴물인가'.

 프랑켄슈타인. 196년전에 태어난 이 괴물은 마치 탄생할 '복제 인간'의 선각자처럼  인간을 향해 질타한다. "나를 왜 만들었냐". 또 요구도 한다. "사랑할 여자를 만들어달라"고. 

 그 '머리 좀 쓰는 괴물'이 다시돌아왔다. 올 봄엔 국내 뮤지컬계를 휩쓸더니 가을엔 연극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이 ㈜연극열전(대표 허지혜)과 손잡고 올린 연극 '프랑켄슈타인'이 CJ 토월극장에서 열연중이다.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하고 드라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이 연극은 2011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초연돼 그해 숱한 상을 휩쓸었다. 그런 연유로 국내에서도 개막 전부터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창조주에 대한 증오와 복수는 소설 원작과 뼈대를 같이한다. 뮤지컬에서 식스펙의 몸과 스타일시한 괴물과 달리 이 연극에서는 '바보같은 괴물'이 마음을 적신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으로 변신한 배우 박해수.


 프랑켄슈타인이 살아나는 장면은 배우에게 달라붙은 시간을 보여준다. 엎어져 일어나 걷고, 넘어지고…. 어기적 어기적하며 무대를 압도하는 그의 열연에 '그래, 그랬을 것이다'는 공감이 인다.  사람을 접합해 만든 괴물(무대에서 물론 설명은 없지만 아는 내용을 감안하자면)은 처음엔 바보처럼 굴다가 점점 똑똑해진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 탓이다.

 외로움은 괴로움을 만들고 폭력을 낳는다. 프랑켄슈타인은 점점 '사람같은 괴물'이 되어간다. 사랑받기 원하고 버림받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집착남'으로 변한다.  결핍이 큰 만큼 습득은 빠르다. 밀턴의 '실낙원'을 줄줄 읊고 사랑의 정의를 이야기하며, "생명을 줬으면 영원히 책임지라"면서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창조주에게 따져 묻는다.

 이번 무대는 '괴물같은 배우'의 탄생을 알린다. 괴물의 압도적 존재감을 발하는 배우 박해수에 훅 빠진다. 창조주인 빅터 프랑켄슈타인보다 괴물에 더 무게를 실어서인지, 괴물에 의한, 괴물을 위한 무대다. 갓 태어나(?)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상태의 피조물이 어떤 몸짓과 말투를 보였고, 그가 성장하면서 인간의 말과 행동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상상하고 고안해 내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을지가 무대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괴물의 존재감을 더욱 빛내는 무대 미술도 세련됐다. 실험실,시체들, 샹드리에, 의자, 나무등이 모두 하얀 비닐로 칭칭감아 만들어 서늘한 신비함과 기괴스런 느낌을 극대화한다. 이른바 '비닐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다.  온통 하얀무대는 괴물의 차가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며 언뜻  SF같은 긴장감도 전한다. 

 ‘괴물(monster)’을 창조하려 한 게 아니라 천천히 언어, 지능 그리고 도덕성까지 습득하는 살아 숨쉬는 존재를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작가 닉디어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뻔한 내용'이라고 가볍게 왔다가 랩퍼처럼 떠드는 괴물의 논쟁에 자못 철학적이고 진지해질 수 있다. 결국 사랑이야기다. 괴물(피조물)을 이끄는 눈먼 노인 드라쎄처럼 '차별없는 사랑'이 필요한 때다. 공연은 11월9일까지. 3만~6만 원, 17세 이상 관람가. 02-580-1300, 02-766-6007
 

▶연극 프랑켄슈타인=작가 닉 디어의 <프랑켄슈타인>은  이제까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피조물(Creature)'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 극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의 피조물이 창조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밤, 젊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을 가졌지만, 동시에 너무나 추악한 외모를 지닌 그의 '피조물 (Creature)’. 그는 창조자 '빅터'에게 조차 버림받고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배척당한다. 자신의 외모를 저주하며 인간 세상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던 '피조물(Creature)'은 숲 속을 헤매다 눈 먼 노인을 만나 언어와 문학, 인간다운 감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노인의 가족들은 그의 추악한 외모에 놀라 그를 저주하며 내쫓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 절망한 '피조물 (Creature)’은 복수를 결심, 그의 기원이자 창조자인 ‘빅터’를 찾아가 자신을 위한 완벽한 '짝'을 만들어 달라고 청하는데.."

연출 조광화는 “공연을 본 후 생명 창조에 대해서 혹은 또 다른 주제에 대해서 논쟁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닉 디어의 한국 공연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여기에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감성’과 ‘휴머니즘’을 첨가했다고 소개했다.  “요즘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해져, 마치 일회용품처럼 사용하고 버린다. 생명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는 시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자 한 연극”이라며 법정 스님의 ‘함부로 인연 맺지 마라’처럼 이 연극을 통해 ‘함부로 창조하지 마라’, ‘인간만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지배를 당할 수 있다. 그것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무대는 뮤지컬<레베카><모차르트> <베르테르><스칼렛 핌퍼넬>등을 맡았던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의상은 이유선 의상디자이너가 맡았다.
배우=박해수가 피조물인 괴물 역을, 이율이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을 맡는다. 눈 먼 노인 드 라쎄 역은 배우 정영주가 연기한다. 정영주는 마담 프랑켄슈타인 역도 같이 맡아 1인2역을 소화한다. 박지아, 전경수, 이현균, 황선화, 안창환, 정승준, 장한얼, 조민정, 이민재, 박도연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