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 호소 불구 분위기 개선은 “글쎄”

2014-09-23 12:5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3일 아침 울산조선소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호소문을 전달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년 만에 파업을 눈 앞에 둔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지난 15일 취임한 권오갑 사장이 조합원 찬반투표 첫날인 23일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손에 쥐어주며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3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각각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인 최길선 회장과 권 사장은 노조 갈등 봉합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노조로서도 더 이상 회사를 위해 희생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파업은 불가피하다는 암울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어 권 사장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벌여온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날부터 26일까지 조합원 1만8000여명을 상대로 쟁의행위 돌입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등 파업수순에 돌입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조의 노동쟁의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연장을 결정함에 따라 현대중공업 노사는 25일까지 교섭을 벌이도록 돼 있다. 하지만 노조의 입장은 강경하고, 사측도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어 합의는 모호한 상태다.
파업 결정 이전부터 노조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에는 파업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의 팽팽한 논쟁이 지속됐으나 투표가 시작되면서 찬성쪽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노조가 일정대로 파업에 돌입하면 19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 기록은 깨진다. 2분기에 5000억원대의 대손 충당금을 반영해 1973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조103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파업의 여파로 3분기 이후 실적도 불안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4년 만에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권 사장은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으로부터 현대중공업 위기수습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은 15일 취임 첫날 곧바로 노조를 찾아가 정병모 노조위원장과 면담을 가진 후 현재까지 울산 조선소에 상주하며 임단협 타결에 매달리고 있다. 최 회장 또한 울산 조선소에 머물며 생산 및 품질 관리에 힘을 쓰고 있다.

권 사장은 23일에도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회사의 잘못이며, 책임이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며, “회사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시기 바란다. 모든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회사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나눠줬다.

그는 지난 16일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취임사에서도 “세계 1위의 명상과 영광은 내려놓고 미래를 바라볼 때이며, ‘현대정신’(現代精神)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원칙과 기본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직‘일’로 승부하고,‘일 잘하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회사’로 변화시켜 나가겠다. 학연, 지연, 서열이 아닌 오직‘일’에 근거한 인사를 실시할 것이다. 무사안일과 상황논리만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분명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사고와 실적 악화, 노사갈등이라는 3중고에 휩싸인 현대중공업은 최 회장과 권 사장을 복귀시켰다. 문제 해결을 위해 현대중공업은 그룹기획실을 신설해 권 사장에게 맡기면서 기존 각사 체제에서 그룹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진행중이며, 경영진단과 함께 사업 및 조직개편, 인력재배치도 준비하고 있다. 권 사장은 현대오일뱅크에 있던 조영철 전무, 금석호 상무, 송명준 상무 등 측근 3명으로 경영진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경영진단 TF는 현재 울산에 머물면서 수익성 악화의 최대원인으로 꼽히는 해양 플랜트 부문 대형공사의 공정지연과 비용증가, 저가수주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일 전망이다. 진단 결과 상당한 수준의 구조조정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개혁을 성공리에 마무리 하려면 직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장 노조 파업을 막아야 한다. 또한 찬반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 불거질 수 있는 노노 갈등 봉합도 권 사장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채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한다면 권 사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되더라도 현대중공업의 개혁은 상당 수준 추진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노사 모두 26일 이후 드러날 투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으로는 파업 찬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